-높빛시론-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코로나 탓에 거의 2년 가까이 못 본 듯 싶었다. 다들 세상살이에 지쳐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주식 이야기가 나왔다. 직장 생활 5년차인데 너도나도 투자하길래 뛰어들어보았단다. 돈 좀 벌었냐니까 아직은 본전치기란다. 회사생활하는 데 방해가 안 되냐니깐 그 정도 규모로는 일상을 방해받지는 않는단다. 다행이다 싶었다. 옆에 있는 이들도 거들었다. 자신들도 주식투자를 했고 재미도 봤다고 한다. 본래 주식에 관심 있던 이들이 아닌지라 적잖게 놀랐다. 정말 온 나라가 주식 열풍에 휩싸인 모양이다.

지방에 강연 갔다 연변 교포 부부를 만났다. 어떻게 해서 한국으로 왔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등을 물어보다가 부부가 주식투자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계기로 투자했느냐니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식으로 한몫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교육을 받았으니 주식 투자 요령을 몰랐을 텐데 어떻게 준비했느냐니까 주식투자에 필요한 노하우를 일러주는 일련의 책을 먼저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슬쩍, 나보고 어느 종목에 투자했느냐 되물어왔다. 나는 아직 주식 한 장 가져보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이야기가 재밌어졌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대학까지 마친 부부는 주식을 하는데, 그네들이 흠모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성장한 사람은 정작 주식 한 장 없다니 말이다.

술자리 방담이 그렇듯 샛길로 빠졌다. 대화를 나누다 부부 가운데 남편이 중국 정치현실을 상당히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정치교육을 받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한마디로 하면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우월성을 침 튀기며 강조하고, 유물사관적 관점에서 역사발전의 방향을 말하더라도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국가를 정의롭다고 여길 수 없노라고 말했다. 요즘 오르내리는 말로 하면 위선에 대한 분노다. 여당이 기초단체장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다음, 그 원인분석을 하면서 가장 입에 많이 오르내린 단어잖은가.
 
진보와 개혁의 상징이었던 세대가 권력을 잡으면서 오히려 지탄과 청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한데다 앞에서는 규제한다면서 뒤로는 자신의 이익을 몰래 챙긴 것이 드러나 엄청난 역풍을 맞이했다. 여당의 한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 “무능한 개혁에다가 위선까지 겹쳤다”라면서 “부동산을 규제했던 당신들도 집 가지고 다 세 올리고 살지 않았나, 청와대 김상조 실장 건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런 것들에 대한 위선이 같이 겹치다 보니까 (재보궐선거의) 결정적 패인이 됐다”고 밝혔다니, 말해 무엇하랴. 물론, 억울한 면도 있을 테다. 상대의 악덕은 왜 비판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여당의 부동산 정책을 반대하면서 시장에서 큰 재미를 본 무리가 가장 많은 곳이 외려 야당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악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으니, 너나 위선을 떨지 말라는 식이었다.

다시 주식 이야기로 돌아가자. 연변 부부는 얼마 전부터 미국 기업의 주식도 샀다고 한다. 두 나라의 경제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미국의 경기동향을 모르고서는 국내 주식투자에서 재미 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역시 실전이 가장 좋은 교육인 모양이다. 헤어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성실하게 맡은 역할을 다하는 사람에게 내일의 삶이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을 줘도 주식열풍은 가라앉지 않고 여전할까? 투자라 쓰고 투기라 읽는 주식열풍에 온 국민이 휩싸이는 것이 과연 건강한 현상일까?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선은 공동체가 나의 미래를 보살피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에 투기판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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