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판장 아닌 관광센터로 계획
철거 계획이었던 한강 군막사
어민들이 수소문 도면 찾아내
정식 건축물로 등재했는데
어판장 아닌 관광센터로 계획
“억울하다. 대체시설 마련하라”
[고양신문] 행주어촌계 어민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어민들은 “행주대교 인근, 철거 위기에 놓였던 폐건물(군막사)을 어민들의 힘으로 지켜냈는데 고양시가 건물을 가로채갔다”며 어판장으로 사용할 대체시설을 시에 요구하고 있다. 문제의 폐건물은 한강을 지키기 위해 군인들이 쓰던 군막사(행주외동 223-1번지)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행주어민들은 17일 고양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펼쳤다. 이날은 행주동 군막사를 고양시가 ‘한강방문자센터’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시의회의 동의를 얻는 절차가 진행되는 날이었다. 안건이 통과되자 어민들은 시 집행부와 의회의 결정을 따를 수 없다며, 다음날인 18일부터 군막사 앞마당과 출입구를 어구(통발) 등으로 봉쇄하는 등 건축물 점유에 들어갔다.
한상원 행주어촌계장은 “철거될 뻔한 건축물을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어렵게 살려낸 장본인이 바로 어민들인데, 이제 와 뒤늦게 고양시가 어판장이 아닌 관광시설로 사용하겠다고 하니 분한 마음이 든다”며 “어민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약속을 어긴 고양시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주 어민들이 행주동 군막사를 어판장 등 어업시설로 제안한 것은 8년 전인 2013년이다. 당시 한강 철책선이 제거되면서 군막사의 용도가 불분명해졌고, 관리책임도 군부대에서 고양시로 이관됐다. 그런데 건축물을 확인해보니 과거 군인들이 당국에 신고 없이 지은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었다. 결국 시는 철거를 계획했지만 철거비 또한 만만치 않아 주저하던 사이 행주어민들이 나서게 됐다. 어민들은 “군막사를 어판장과 어촌계사무실, 방문자 체험장소로 활용하면 좋겠다”며 어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시에 요청했다.
이에 고양시는 서류 등 건축물에 대한 근거가 있어야 철거를 피할 수 있다며 어판장으로 쓰려면 도면을 찾아오라고 요구했고, 어민들은 군부대를 수개월간 수소문해 건축도면을 어렵게 찾아내 2014년 고양시에 전달했다. 고양시는 2015년 도면을 토대로 군막사에 대한 측량을 실시하고 건축물 대장을 등재해 정식건물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행주어촌계는 같은 해 고양시의 요청으로 ‘행주군막사 사용계획서’를 제출하고, 이와 함께 관할 수협으로부터 군막사에서 사용할 생태교육 기자재까지 지원받는 등 만반의 준비를 끝냈지만, 고양시가 특별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2018년 고양시는 ‘한강하구 역사관광벨트조성사업’이라는 제법 큰 규모의 공모사업(총 사업비 106억원)에 선정됐고, 사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행주군막사는 공모사업의 핵심시설(한강방문자센터)로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어민들은 작년 이재준 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군막사 사용이 어렵게 되면 어촌계를 위해 대체시설(부지)을 검토해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 시의회의 의결과정까지도 고양시는 어민들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 대책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고양시는 어민들의 요구에 대해 관광과와 농산유통과가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건축물에 대한 사용 권한을 가진 관광과는 “어촌계와 관련된 업무는 하지 않는다”며 “어로활동 지원과 어촌계 민원을 담당하는 농산유통과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농산유통과는 “군막사에 대한 대체시설보다는 행주대교 아래 선착장과 물양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사업, 그물 등을 손질하고 보관하는 시설을 주변환경에 맞게 정리하는 사업을 계획 중에 있다”고 답했다.
이에 심화식 행주어촌계 비상대책위원장은 “선착장 현대화와 어구 정리 사업은 군막사 활용과는 상관없이 주변이 공원화되는 과정에서 진행되는 별도의 사업”이라며 “이번 일과 연계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철거 위기에 놓였던 행주군막사는 어판장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행주어민들이 군부대의 협조로 살려낸 건축물이 분명하다”며 “어민들의 동의 없이 고양시가 관광지원시설로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족할 만한 대안을 내놓기 전까지 군막사 앞 어구들을 치우지 않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