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는 산업 억제, 부동산 정책으로는 ‘아파트 폭탄’

 

서울 집값폭등·부동산위기마다  
고양은 주택공급 ‘만만한’ 대상
공업총량제·취등록세 중과세로 
기업·산업 억제만 제대로 실효
다수 비수도권 의원, 개정 꺼려  

  

[고양신문] 올해는 일산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2년으로부터 30년을 맞는 해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고양시 인구와 집은 점점 늘어났다. 반면 일자리는 여전히 없고,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출근하는 길은 점점 고달파졌다. 표면적으로 도시의 ‘팽창’이 이뤄졌지만 내실 있는 도시의 ‘성장’은 이뤄지지 못했다. 고착화되는 베드타운에서 벗어날 기회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고양시에는 변화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방송영상밸리, 일산테크노밸리, GTX, 창릉신도시 등의 개발로 고양시는 변화를 향한 폭넓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전례 없는 전환기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과연 고양시가 인구와 집만 많았던 도시에서 기업이 있고 미래 산업을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현실을 보자면 도시성장을 위한 정부, 경기도, 고양시 각 층위별로 개발 계획은 갖추었다고 볼 수 있지만 헤쳐 나가야할 길은 멀다. 무엇보다 크나큰 제약조건이 도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제약조건이 바로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 가지는 모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어떻게 고양시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는지 요목조목 살펴본다. 그리고 이 법의 개선 혹은 극복 방안은 과연 없는지 모색해 본다.  

손뼉 안 맞는 수정법과 부동산정책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은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2년 제정, 1994년 전문개정된 법이다. 고양시는 수정법이 제정되면서 이전촉진권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1992년부터 일산신도시에 계획인구 27만6000명이 유입되자 1994년 개정된 수정법에 따라 과밀억제권역으로 묶여 버렸다.  
개정된 수정법은 수도권을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고양시는 과밀억제권역에 속하기 때문에 수도권 내에서도 산업을 억제하는 강도가 강한 곳이됐다. 인접한 파주는 산업 입지가 가능한 성장관리권역에 속하지만 고양시는 산업 입지가 원천봉쇄된 것이다.  

일산신도시는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 주택 공급정책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발표된 창릉신도시 역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계획도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고양시는 늘 정부의 주택 공급정책의 ‘만만한’ 대상지였다.
일산신도시는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 주택 공급정책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발표된 창릉신도시 역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계획도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고양시는 늘 정부의 주택 공급정책의 ‘만만한’ 대상지였다.

수정법은 산업뿐만 아니라 ‘인구집중유발시설’도 억제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상 인구집중유발시설에는 학교, 공공 청사, 업무용 건축물, 판매용 건축물, 연수시설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산업시설과 인구집중유발시설은 수도권정비계획법 상으로는 억제의 대상이지만 도시의 성장 측면에서는 확보의 대상이다. 도시의 자족기능은 이 산업시설과 인구집중유발시설로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수정법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었다. 정부는 수정법으로는 수도권에 인구 집중을 억제하려 하면서도 부동산 정책으로는 수도권, 특히 서울 인근 지역으로 인구 집중을 양산해왔다. 

그렇다고 수도권의 모든 지자체가 균일하게 이러한 모순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과밀억제권역으로 묶여 있는, 서울의 주택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되도록 서울과 가까운 고양시에서 이러한 모순은 두드러진다. 서울 도심으로부터 일산신도시는 약 20km, 창릉신도시는 약 15km 떨어져 있다. 일산신도시는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 주택 공급정책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발표된 창릉신도시 역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계획도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고양시는 늘 정부의 주택 공급정책의 ‘만만한’ 대상지였다. 정부는 고양시를 규제 대상지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부동산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주택수요를 분산시키는데 안성맞춤인 곳으로 여겨왔다.

이춘열 전 고양시민회 대표가 최근 펴낸 책 『살며 사랑하며 고양시 길라잡이』에는 ‘수정법 상 고양시에 고용 능력을 갖춘 생산시설의 입지가 애초에 불가능했던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단위 택지개발인 신도시 건설계획 자체가 사실상 수정법을 초월한 위법행위였는데, 정부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족시설 유치라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가 결국 약속까지 위반한 셈이니, 정부의 책임이 실로 막중하다’고 전하고 있다.   

수정법, 균형성장 취지에 역행 
그렇다면 수정법의 어떤 조항이 고양시 자족기능을 원천봉쇄 시킬까. 

수정법 제7조 1항은 대학교 같은 교육시설이나 기업·산업 같은 생산시설을 짓거나 증설하는 것을 못하도록 못 박는다. 그렇지만 수정법 제정 이전인 고양군 시절부터 애초에 대학교나 기업, 산업기반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고양시에서 늘어난 것은 108만 명의 인구와 약 45만호의 집뿐이었다. 수도권균형개발이라는 수정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도리어 고양시는 균형성장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다.  

수정법 제7조 2항도 도시성장에 단단한 족쇄로 작용했다. 굴뚝산업이 주를 이루던 1982년 제정된 수정법은 ‘공업 총량제’를 두어 경기도 전체의 공업지역 면적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해놓았다. 그런데 이 공업지역은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전제가 되고 있다. 이현정 고양시정연구원 부원장은 “수도권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이전에 해당 단지에 공업지역 물량을 배정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만약 공업지역이 아닌 곳에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면 비수도권 여러 지자체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고양시가 확보하고 있는 공업지역은 겨우 일산테크노밸리 내 10만㎡, 덕은지구 개발 전에 있던 6만6000㎡가 전부다. 이는 경기도에서 구리시, 과천시와 함께 경기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고양시 기업지원과는 “기업은 공업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들어오기를 원한다. 부지를 조성원가로 확보할 수 있고 중과세 부담을 덜어주는 여러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업지역 면적이 수도권 다른 지자체에 비해 적은 고양시는 경기도와 국토부에 공업지역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공업 총량제 때문에 고양시가 공업지역을 넓히려면 타지자체의 공업지역을 줄여야 한다. 수정법 상황에서는 다른 지자체가 공업물량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정법에는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방세법도 고양시의 도시성장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수정법에서 파생된 지방세법 조항이 그렇다. 과밀억제권역에 유치되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중과세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과밀억제권역 내 기업은 수정법에서 규정한 건축비 10%의 과밀부담금 외에 취득세와 법인등록세를 3배 정도 더 내야 한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과밀억제권역 중과세제도 개선방안’에서 ‘수도권의 도시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할 때, 중과세제도에 의한 기업활동 위축은 지역경제의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성장 능력을 상당부분 잠식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과밀억제권역이라도 중과세가 면제될 경우는 있다. 가장 확실한 경우는 국가산업단지 혹은 일반산업단지에 기업이 들어올 경우다. 하지만 고양시는 공업지역이 협소하기 때문에 산업단지로 지정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중과세를 면제받을 수 또 하나의 경우는 방송사업‧중계유선방송사업, 첨단기술산업, 소프트웨어사업을 할 경우다. 지방세법 시행령 26조 1항에 지정한 중과세 면제 사업이면 과밀억제권이라도 중과세는 면제될 수 있는 것. 벤처기업집적시설에 입주한 벤처기업도 중과세가 면제된다. 따라서 다행스럽게 일산테크노밸리에 조성하려는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에 입주할 BT(생명공학기술)관련 기업, 방송영상밸리에 입주할 방송관련 기업, 창릉신도시에 입주할 벤처기업 등은 중과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피해산정으로 수정법 개정 설득력 확보” 
수정법 개정 노력은 수도권의 과밀억제권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줄기차게 이뤄져왔다. 국회에서 수정법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은 이유는 수정법 개정을 원하지 않는 국회의원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수정법으로 규제를 받는 수도권의 몇몇 지자체 국회의원 수에 비해 수정법을 지지하는 대다수 비수도권 지자체 국회의원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수정법 개정을 원하는 지자체들끼리 똘똘 뭉쳐야 하는데,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각 권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입장을 가지기 어렵다.   

이용우 국회의원 역시 작년 11월 수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수도권의 인구집중 유발시설 총량제를 유지한 가운데 권역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 의원은 “재조정은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이 인천, 경기도 등 2개 광역으로 나눠지는데, 이를 4개 이상으로 세분화시키는 것이다. 고양시도 2개 이상으로 나눠질 수 있고, 고양시 일부가 파주시 혹은 김포시 일부와 같은 권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세분화된 만큼 각 지역 상황이 보다 잘 반영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밀억제, 성장관리, 자연보존 등 3개 권역과 각 지역 상황 사이의 적합성이 높아지도록 권역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수정법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지만, 비수도권 의원들이 논의 자체를 꺼려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큰 진전이 없다.         
수정법 개정이 아닌 수도권정비계획 자체를 직접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수도권정비계획은 수정법에 입각해서 국토부의 수도권정비계획위원회에서 입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도권정비계획위원회의 위원들은 중앙정부가 사실상 임명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수도권정비계획위원회 구성원을 지방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구태여 포괄적인 수정법을 바꾸지 않더라도 수도권정비계획의 구체적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고양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수정법이 내세우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 허점이 있다는 점을 정확한 고양시 피해산정으로 입증해 내는 일이다. 이춘열 전 고양시민회 대표는 “고양시가 수정법으로 인한 피해뿐만 아니라 개발제한구역, 군사보호구역으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를 정확하게 산정을 해서 정부에 피해보상 요구를 하고 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송을 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렇게 피해보상 요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정법 개정을 시도해보았자 마치 중앙정부에 시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비춰지기 십상이다. 피해보상 요구를 먼저 해야만 수정법 개정의 설득력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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