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충해가 나무에 구멍을 뚫어놓은 느티나무. 벨 나무와 살릴 나무에 대한 꼼꼼한 조사가 필요하다. [사진제공=김윤용]
병충해가 나무에 구멍을 뚫어놓은 느티나무. 벨 나무와 살릴 나무에 대한 꼼꼼한 조사가 필요하다. [사진제공=김윤용]

[고양신문]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은 느티나무 가로수 두 그루를 보았습니다. 일산 신도시가 들어설 때 30년생을 심었다면 60살 가까운 아름드리 나무입니다. 잘리기 전에는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멋진 수형을 뽐냈겠지요.

몇 년 전 일산역 앞 느티나무 가로수가 강한 비바람에 쓰러져 사람을 덮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일산 가로수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병충해 피해를 입은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베어지고 있습니다. 나무가 병충해와 곰팡이균으로 썩고 쓰러지면서 인명과 재물 피해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가로수 나무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꼼꼼하게 조사하지 않고 무조건 베어버린다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요. 일산 곳곳에 심어놓은 느티나무, 회화나무, 느릅나무, 중국단풍나무 가로수들이 잘려나가고 어린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심지어 회화나무를 가로수로 조성한 곳에 뜬금없이 이팝나무 종을 심어놓기도 하는군요.

잘린 느티나무 두 그루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나무에 기생하는 균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한 그루는 나무껍질 바깥에 노란색 곰팡이균(버섯균)이 번져있군요. 균이 퍼진 부분을 외과적으로 긁어내고 약품으로 치료하면 자르지 않아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나무 한 그루의 잘린 단면을 살펴보니 목재 안에 병충해가 파먹어 구멍이 뚫린 것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이 나무 같은 경우에는 외과적 시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외과적 시술로 충분히 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느티나무 가로수 그루터기. [사진제공=김윤용]
외과적 시술로 충분히 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느티나무 가로수 그루터기. [사진제공=김윤용]

잘린 두 그루 느티나무 그루터기를 보면서 나무의사 등 전문가에게 맡겨서 벨 나무와 외과적 치료 또는 치료제, 영양제 공급 등으로 치료가 가능한 나무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나무를 다루었으면 싶었습니다.

2019년 3월 28일, 고양시는 전국 최초로 ‘나무권리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나무권리선언문 기념비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담은 나무권리선언으로 공공수목관리에 대한 기본 이념을 바로 세우고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고양시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라고 밝히고 7개 조항을 새겨놓았습니다. ▲나무는 한 생명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태어난다 ▲나무는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머무를 주거권이 있다 ▲나무는 고유한 특성과 성장 방식을 존중받아야 한다 ▲나무는 인위적인 위협이나 과도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나무의 권리는 제도로 보호받아야 한다 등입니다.
호수공원에 나무권리선언문을 새겨놓은 기념비를 설치하고 모감주나무를 기념식수했습니다.

2019년 3월 28일 일산호수공원에 세운 나무권리선언문 기념비. [사진제공=김윤용]
2019년 3월 28일 일산호수공원에 세운 나무권리선언문 기념비. [사진제공=김윤용]

나무권리선언식에서 이재준 고양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가 울창해지면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를 앙상히 잘라냈고, 태풍과 폭우로 상처 입은 나무는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베어냈습니다. 뜨거워진 대지와 먼지로 가득한 대기는 나무의 마지막 호소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무의 권리일지라도 인권과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아울러 고양시는 “무분별한 가지치기와 30년 이상 된 나무의 벌목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일산호수공원과 근린공원, 그리고 가로수들이 무참하게 잘려나가고 있습니다. 자작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 한 아름이 넘는 왕벚나무….

저는 고양시가 나무권리선언을 발표할 때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무와 공존하려는 고양시가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나무권리선언이 일회성 깜짝 행사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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