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아내는 아침마다 사과를 깎고 『입보살행론』을 필사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아침을 깨웠다. “저는 박복하고 몹시 가난하여 공양을 올릴만한 재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타행이 원만하신 보호자께서는 저를 자비로이 받아주소서.”

아내의 기도는 소리 없고, 아내의 바람은 고요했다. 이불에서 나와 아내가 깎아놓은 사과 한 조각을 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사과 속에 아내의 향기가 묻어있었다. 아내의 상차림은 정갈하고 소박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며, 흐르는 물로 그릇을 씻으며 오늘 하루도 깨끗하기를 빌었다.

힘겨운 노동으로 매사에 피곤한 아들을 차에 태워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며, 서로의 손을 쓰다듬으며 안녕을 빌었다. 후회도 두려움도 없는 하루가 되기를. 건강하고 복된 하루가 되기를. 군대에 간 막내아들은 아내에게 하루에 한 번씩 안부(安否)를 묻는 전화를 했다. 편안하신가요? 착한 아내는 시시때때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앉아서 기도하고, 걸으며 기도하고, 잠들며 기도한다. 아내의 기도는 역사가 깊어 장모님을 닮아간다. 장모님도 매일 저녁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하신다. 장모님의 기도는 노동을 닮아, 매일 같이 같은 내용을 닳고 닳도록 읊조리신다. 불경을 필사하던 아내는 ‘아멘’으로 장모님의 기도에 응답한다.

일이 줄어들자, 삶의 속도가 느려졌다. 널뛰던 심장박동수가 일정해졌다. 숨가쁨도 가라앉았다. 걸음걸이도 느긋해졌다. 천천히 걷게 되자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눈이 위로 하늘을 보고, 아래로 대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향기’가 풍겨왔다. 찌개 끓는 소리에 맞춰 구수한 냄새가 식탁에 펴져갔다. 식사를 마치고 농장으로 향했다. 느닷없는 비가 농장에 쏟아지자 온갖 작물들의 향기가 밭 가운데 그득했다. 비 그치고 작물을 갈무리하는 노동으로 땀이 흘렀다. 영혼을 잃어버린 좀비와 같은 삶에 피가 돌아 함부로 남을 물어뜯지 않게 되었다. 삶이 유순해졌다.

나는 심야시간을 빌어 불경을 명상하기 시작했다. 『금강경』을 시작으로 『숫타니파타』에 이어 『반야심경』을 명상하고 있다.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 기독교 성경은 소리가 드높은데, 불경은 소리가 가라앉는다. 기독교는 간절히 바라고, 불교는 절실히 버린다. 나는 이 바람과 버림 사이를 오가며 생각의 웅덩이를 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타 악티바(행동하는 삶)’과 더불어 ‘비타 콘템플라티바(사색하는 삶)’을 소중히 여겼다. 비타 악티바는 움직인다. 비타 콘템플라티바는 멈춘다. 움직이면 가닿고, 멈추면 보인다. 가야 할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 행동해야 할 때가 있고,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역사의 시간이 있고, 철학의 시간이 있다.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가다가 멈춰야 하는 것 또한 인생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멈춤의 시간을 선사했다. 질주하던 인류에게 잠깐만 멈추라고, 멈춰서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가 들어보라고, 욕망으로 가득 찬 나의 소리가 아니라, 고통으로 가득 찬 타자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듣고 있었으나 외면한 소리를 챙겨 들어보라고, 자세히 들어야 들리는 약자들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가 선사한 이 사색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기도와 명상, 사색의 시간이다. 비타 콘템플라티바(vita contemplativa)! 보아야할 것을 보고, 들어야할 것을 듣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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