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양신문] 순간, 괜히 말했나 싶었다. 기후위기를 다룬 책의 내용을 공유한 다음, 지은이가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최근 빌 게이츠가 차세대 소형 원자로 건설을 탈탄소의 대안으로 제시하자 이를 반대하는 칼럼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핵발전소의 안전을 옹호하는 이들이 반론을 폈다. 잠시 후회했던 것은 우리가 맞이한 기후위기 문제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층위의 문제를 다루는 게 부담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거기에다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사회가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대목이라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순간, 당혹스러운 대목이 있었다. 시민사회는 핵발전과 이해관계가 없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충실하면 된다. 내가 순진했으니,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벌어진 사고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 파장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형 원자로는 기술적 결함이 없고 안전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더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핵발전소 사고 발생의 원인이 달랐다는 점, 핵폐기물의 안정성이나 비용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한국형 원자로의 안전을 자신했다는 사실이다. 핵발전 덕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는데, 이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는 오히려 순진해보일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이런 반응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핵발전의 안정성을 널리 알리는 데 치중해왔다. 그 문제점은 시민사회나 환경운동가들이 지적해왔을 뿐이다. 기울어져도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순간, 황당한 말도 들었다. 핵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치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는 투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했는데, 금세 눈치챘다. 이 정부 들어 추진된 탈핵정책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잣대를 들이민 것이다. 탈핵문제를 둘러싼 전선이 복잡해지겠구나 싶었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들은 이 정부의 탈핵정책을 반대하다 탄압받았다고 나서고 있다. 겉으로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대화하거나 토론하더라도 속으로는 정치소신에 따라 발언하고 있다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은 찾기 어려울 테다. 지구는 가열되고, 탈탄소는 더딘데, 핵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한다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싶었다.
순간, 당황했다. 핵발전을 옹호하는 분이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을 계속 제기했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잠재적인 핵발전의 위험과, 당신이 말하는 재생에너지의 피해가 비교가능한 것이냐, 였다. 다음으로 재생에너지는 현재 전기 저장능력의 향상이라는 기술적 난제, 그리드(전력망)의 재편이라는 과제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하지만 나중에 제기된 문제사례를 살펴보니 상당히 지엽적이고, 왜곡되어 있고, 가짜 뉴스 성격이 강했다. 왜 이렇게까지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을 부각해야 했을까?
앞에서 말한 책은 조천호 교수의 『파란 하늘 빨간 지구』다. 조 교수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0년 “태양광 발전이 가장 저렴한 전기 공급원이라고 선언”한 점, “정부가 저탄소 에너지 예산을 핵발전에 투입하면 재생에너지 기술에 투자할 자금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 “핵발전은 저탄소 에너지이긴 해도 핵폐기물을 쏟아내 재생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핵발전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기후위기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점에 동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음세대에게 안전한 삶의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핵발전이 대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위험을 다음세대에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껏 인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 지금 인류에게는 “네 다음세대를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이 주어졌다. 이 소명을 마침내 실천할 수 있을까? 내가 인류의 미래를 비관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