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느티나무 아래 야외테이블에서 막걸리를 반주 삼아 점심을 먹다보면 더러 밥을 남길 때가 있다.
요즘에는 음식을 먹다가 배가 부르면 아무렇잖게 밥숟갈을 내려놓는 게 예삿일이 되어버렸지만 예전에는 밥그릇에 밥알 한 톨만 남겨도 네 이 놈 하고 그 자리에서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딴에는 싹싹 비운다고 비웠는데도 빨리 나가서 놀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밥숟갈을 내려놓다보면 밥그릇 안쪽에 밥풀이 서너 알 붙어있기 마련이고, 그런 날에는 귀뺨에서 번쩍 불이 나거나 저녁을 쫄쫄 굶기도 하고, 농민의 피땀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훈계를 잠이 쏟아질 때까지 들어야 했다.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된 이후로도 밥을 남겨본 적이 없다. 물론 밥을 남길 만큼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어쩌다 밥을 남길 사정이 생기면 묘한 죄책감에 하루가 찜찜했다.
그런데 농장을 운영하고 나서부터는 밥을 남겨도 하루가 편안하게 시간만 잘 갔다. 먹다 남긴 밥을 그래 새들도 먹고 살아야지 하고 야외테이블 주변에 뿌려놓으면 참새들이 요란하게 몰려와서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간다. 새들 덕분에 벌레피해 없이 편하게 농사짓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일부러 밥을 퍼서 여기저기 툭툭 던져놓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새들이 밥 먹는 광경을 나는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본 기억이 없다. 아마 농사일이 사방에 널린 탓이기도 하겠지만 한가한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먼산바라기를 하며 상념에 빠지거나, 빈둥빈둥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시간에 골몰한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먹다 남긴 점심밥을 야외테이블 저만치 흩뿌려놓은 뒤 나는 평상 위에 배를 깔고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태웠다. 그때 참새 두어 마리가 포르릉 내려앉았고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밥알 주변을 종종거리던 참새들은 바로 먹지를 않고 허공을 향해 요란스레 짹짹거렸다. 그러자 몇 마리의 참새들이 재빠르게 날아들었고 녀석들 또한 먹는 일은 뒷전으로 합창을 하듯 짹짹 목청을 높였고 이내 수십 마리의 참새떼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 자리에 모인 참새들은 그제야 밥알을 물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참으로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참새들은 부리에 문 밥알을 바로 먹지를 않고 옆의 참새가 한 입 베어 물면 나머지 밥알을 먹었다. 한두 마리만 그러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참새들이 짝을 이뤄 오순도순 밥을 나누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빼빼로 과자를 마주 물고 입을 맞추듯.
나는 참새들이 모이를 나누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해보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 배 고파야 남의 배고픈 줄 알고, 내 살이 아파야 남의 살 아픈 줄 안다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남의 삶을 들여다볼 공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나누는 삶이 일상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모이를 앞에 두고서도 소리 높여 동료들을 부르고, 동료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모이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참새들에게서 나는 큰 깨달음도 얻었지만 동시에 큰 부끄러움도 얻었다.
어쩌면 저러한 삶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곰곰이 되새겨보기도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