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배롱나무. 가지를 넓게 드리운 배롱나무 붉은꽃이 탐스럽다.
고창 선운사 배롱나무. 가지를 넓게 드리운 배롱나무 붉은꽃이 탐스럽다.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햇빛이 따가운 여름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그것도 100일 동안이나 핀다고 하니 여름꽃 하면 이 나무가 떠오릅니다. 붉은색, 보라색, 흰색으로 피는 나무로 목백일홍(木百日紅), 자미화(紫微花)라고도 부르는 배롱나무입니다. 백일홍을 읽으면 배기롱, 배기롱이 배롱으로 줄어 나무 이름이 왔다고 추정합니다. 나무 껍질이 없는 것처럼 매끈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는 간지럼나무라고 부른답니다.

나무 공부를 할 때 도움을 받은 책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즐겨 읽었던 책이 박상진 교수님이 쓴 『우리 나무의 세계 1·2』와 『궁궐의 우리 나무』였습니다. 책을 여러 번 읽고 가방에 넣어 다니며 나무를 확인하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박상진 교수는 나무를 쉽게 설명합니다. 서어나무를 ‘숲 속 보디빌더’라 비유하는 방식입니다. 배롱나무를 얘기할 때 박 교수님은 도종환 시인이 쓴 시 <목백일홍>을 슬쩍 내밀고 얘기를 꺼냅니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그런 뒤 도종환 시인이 보는 눈이 정확하다면서 “꽃 하나하나가 이어 달리기로 피기 때문에 100일 동안 피는 꽃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가지 끝마다 원뿔모양의 꽃대를 뻗고 굵은 콩알만 한 꽃봉오리가 매달려 꽃을 피울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아래서부터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꽃이 피어 올라간다. 대부분의 꽃들은 꽃대마다 거의 동시에 피는 경향이 있으나 배롱나무 꽃은 아래서부터 위까지 꽃이 피는데 몇 달이 걸린다”라고 설명합니다.

100일 동안 핀다는 배롱나무꽃. 한 꽃이 100일 피는 게 아니라 아래부터 윗쪽으로 피었다 졌다 한다.
100일 동안 핀다는 배롱나무꽃. 한 꽃이 100일 피는 게 아니라 아래부터 윗쪽으로 피었다 졌다 한다.

나무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첨부했던 『궁궐의 우리 나무』도 훌륭한 책입니다. 곁에 두고 볼만한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들고 창덕궁, 후원, 창경궁, 덕수궁, 경복궁을 여러 번 찾았습니다. 박상진 교수님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저는 사사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무맹(盲)을 벗어나게 해준 분으로 여깁니다.

나무 공부에 도움을 준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두 여성 생태학자가 쓴 책들입니다.
하나는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이 쓴 『우리 나무 백 가지』입니다. 이유미 원장은 식물분류학을 전공하고 국립광릉수목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수목원장이었습니다. 생태학자로서 묵묵히 한 길만을 걸으면서 쉽게 쓴 책으로 많은 사람을 자연으로 안내했습니다. 저도 ‘꼭 알아야 할…’이란 부제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무 공부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차윤정 박사가 쓴 『신갈나무 투쟁기』입니다. 신갈나무를 의인화하여 신갈나무 일대기를 써내려간 책입니다. 신갈나무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까지. 차 박사는 산림생태학을 전공하고 『죽은 나무』 『우리 숲 산책』등 많은 책을 통해 자연을 알리는 전도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5월, 이명박 정부 때 4대강살리기 환경부본부장 겸 홍보실장을 맡았습니다. 생태학자가 개발론자 입장에 선 것이지요. 이 때문에 독자 중에는 차 박사 책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는 얘기도 했었습니다.

처음처럼 초심을 유지하는 게 힘든가 봅니다. 저도 나무 공부를 시작할 때 가졌던 호기심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처음 가졌던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정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제주도 난대림 나무를 공부하고 있고, 풀 공부에 빠져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일상을 되찾아 대면모임을 가질 수 있을 때, 함께 일산호수공원을 산책하며 나무와 풀을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산호수공원 노을. 2019년 8월 모습이다. 더 시간이 지나면 고층건물이 들어서 스카이라인을 훼손할까 두렵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