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김장농사를 끝내고 나니 일손이 한가해졌다.

이제는 풀과 씨름할 일도 없고 딱히 신경 써서 돌봐야할 작물도 없다. 시월이 되면 가을걷이를 하고 겨울농사를 짓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김장채소가 무탈하게 잘 크는지 뒷짐 지고 휘적휘적 텃밭을 둘러보는 게 고작이다.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게 된 나는 옳다구나, 이참에 바가지나 만들어야지 작정하고 다양한 종류의 넝쿨작물이 주렁주렁 매달린 터널에서 대여섯 개의 조롱박을 수확했다. 그런데 그 속에 미처 여물지 못한 조롱박이 섞였고, 이걸 뭐에 써야하나 잠시 난감해하던 나는 에라 모르겠다 껍데기를 벗겨내고 뽀얀 속살을 송송 썰어서 소고기국을 끓였는데 햐, 그 맛이 참으로 별미였다. 난생 처음 먹어본 박 맛에 반한 나는 아하, 이래서 흥부가 박을 심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비로소 박의 참된 가치를 깨달은 기분이었다.

탐스럽게 열린 조롱박들
탐스럽게 열린 조롱박들

농사를 짓다보면 작물의 활용가능성은 여간 다양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안에서만 작물을 바라볼 때가 많다.

이번에 깨달았지만 조롱박만 하더라도 그렇다. 아직 경험을 해보진 못했지만 조롱박은 밥을 지어서 양념장에 싹싹 비벼도 맛있을 것 같고, 나물로 무치거나 전을 해먹어도 좋을 것 같고, 말랭이로 말려두었다가 조물조물 무쳐서 먹거나 된장찌개에 넣어도 그만일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잘 덖어서 차를 끓여먹거나 청을 담가서 요리에 활용해도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관지에 좋기로 소문난 수세미도 그동안은 설거지용 수세미로만 사용해왔지만 상상의 폭을 조금만 넓히면 조롱박만큼이나 활용도가 다양할 게 분명하다.

속을 파내서 바가지로 변신할 준비를 끝낸 조롱박들
속을 파내서 바가지로 변신할 준비를 끝낸 조롱박들

조롱박이나 수세미는 특용작물에 속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접하는 작물들의 가치를 몰라보거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적지 않다.

원래 열매채소들은 그 크기가 제각각이기 마련인데 마트에 진열된 채소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텃밭에서 열매채소를 수확할 때 화들짝 놀라면서 당황할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게 애호박과 가지와 오이이다. 수확시기를 며칠만 놓쳐도 애호박과 가지는 사람의 팔뚝만큼 커지고 오이는 노각이 되어버린다. 농사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모든 걸 감사히 받아들이지만 일부 초보농부들은 먹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를 해도 몹시 부담스러워하다가 우람한 애호박과 가지와 늙은 오이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사라진다.

배추와 김장 무도 왜곡된 시선 때문에 천대 받을 때가 많다.

한 날 한 시에 심었다고 해서 모든 배추와 무가 똑같이 자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포기가 잘 찬 배추가 있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비행접시 배추가 있기 마련이고, 마트에서 파는 상품처럼 잘 자란 무가 있으면 아기 발바닥만한 무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장철에 보면 미처 자라지 못한 배추와 무를 텃밭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겉보기에는 참으로 볼 품 없고 못나 보이지만 비행접시 배추나 조막손 같은 무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요리재료들이다. 그런데도 못난이로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 많은 작물들이 천대를 받는다. 작물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텃밭에서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그래서 새삼 조심스럽다.

 

잘 자라고 있는 배추들
잘 자라고 있는 배추들

 

주렁주렁 매달린 수세미들
주렁주렁 매달린 수세미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