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 받을 행정권한 확보하려면 관련 법령 하나하나 뜯어고쳐야
특례시 공동발굴 사무특례 421건
행안부와 함께 하나씩 면밀히 검토
1건당 관련된 법령 개정이 큰 과제
“재정특례는 타지자체에 피해준다”
국회에서 부대의견 달아 차단해
[고양신문] 내년 1월 13일은 고양시로서는 자치 확대를 향한 새 출발선을 긋는 날이다. ‘특례시’로 공식 출범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9일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를 특례시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지방차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고양시는 수원·용인·창원과 함께 특례시 출범을 앞두게 됐다.
많은 이들이 특례시가 가지는 의미를 광역시급 위상에 걸맞는 행정·재정 자치 권한 확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혹자는 ‘광역시급 위상에 걸맞는’이라는 수식어를 ‘준(準) 광역시급’이라는 말로 대체하기도 한다. 아무튼 모든 면에서 반드시 광역시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일부분에서는 광역시와 동일하거나 최소한 일반 지자체와는 차별되는 위상을 가지는 새로운 지방행정체계로 이해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이러한 이해에서 더 깊이 나아가지 못한다. 시민 각자에게 피부에 와 닿을만한 변화 역시 없다.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 정부, 광역지자체로부터 이양 받을 행정 권한(사무특례)과 재정 권한(재정특례)이 무엇인지 특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양시가 특례시가 되니 고양시의회는 특례시의회가 되고 고양시민들은 특례시민이 되는 것이 이치이지만, 행정·재정 자치 권한이 무엇인지 특정되지 않는다면 특례시라는 명칭은 공허한 껍데기일 뿐이다.
특례시 공식 출범을 불과 세 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정부, 광역지자체로 이양 받을 행정·재정 자치 권한 확보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살펴본다.
시행령개정안, 기존 법률만 나열
행안부는 지난 8월 27일 ‘지방자치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이하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4개 특례시의 자치 권한 확대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시행령 개정안에는 기존 법령 안에 있는 사항들을 모아 열거만 했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안 별표에 인구 100만 이상의 특례시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도의 사무를 8가지로 명시해 놓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고양시가 이미 행사하던 권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표1 참고>.
가령 8가지 중에 지역개발채권 발행은 기존 지방공기업법이 보장하던 사항이고, 50층 이하의 건축물에 대해 경기도 승인 없이 직접 허가는 기존 건축법이 보장하던 사항이다. 그 외 경기도와 협의를 전제한 택지개발 지정, 도지사를 경유하지 않은 농지전용허가 신청서 제출, 지방연구원 설립 등은 현재의 고양시 자치 권한 속에 있던 사항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내용이 없다.
따라서 현재 ‘허울뿐인 개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국 특례시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난 8월 입법예고된 지방자치법 관계 법령은 광역과 기초지자체라는 이분법으로만 적용하고 있다”며 “450만 특례시 시민들의 불합리한 차별 해소를 위해 관계 법령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무특례 건당 관련법령 검토해야
그렇다면 왜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특례시의 자치 권한 확대를 가져올 새로운 내용을 담을 수 없었을까.
그 이유를 법령 개정의 어려움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 광역지자체로부터 이양 받을 행정 권한(사무특례)를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 사무특례와 연관된 관계법령까지 수정해야 한다. 관계법령을 뛰어넘어 사무특례를 곧바로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특례시가 요구하는 사무특례 한 건과 연관되는 법령이 하나면 수월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다면 해당 사무특례를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하기는 훨씬 까다로워진다.
고양시를 비롯한 4개 특례시가 애초에 공동으로 발굴하고 요구한 사무특례는 421건에 이른다. 여기에는 ▲토지수용위원회 설치 권한 이양 ▲주택 관련 정책에서 지구지정권 등 추진 권한 이양 ▲정부공모사업에서 광역지자체를 경유하지 않는 직접 신청 ▲사회보장급여 이의신청 절차 간소화 ▲30만㎡ 이하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표2 참고>.
하지만 특례시가 요구한 421건의 사무특례를 하나씩 검토는 하고 있지만 모든 사무특례를 행안부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각 사무특례와 얽혀있는 법령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관계 법령을 개정해서라도 이양(정부·광역지자체⟶특례시)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사무특례만을 가려내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절차는 현재 4개 특례시와 행안부가 협의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고양시 평화미래정책관 특례시추진팀을 비롯해 수원·용인·창원시 등 각 특례시 전담팀이 행안부 자치분권제도과 직원들과 함께 특례사무를 하나씩 검토하고 있다.
김대성 고양시 특례시추진팀장은 “지난 8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세종시로 찾아가서 행안부 자치분권제도과 직원들과 함께 사무특례를 하나씩 뜯어보고 있다. 직접 만나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는 주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화상회의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 검토해야 할 사무특례는 많지만 최근 일단 급하게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무특례를 간추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고양시, 인재개발원·시립대 우선순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무특례 중에서도 고양시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것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고양시 인재개발원’ 설립 ▲‘고양 특화작목 시험장’ 설립 ▲‘고양시립대학’ 설립에 대한 행정적 권한이다.
‘고양시 인재개발원’ 설립 요구는 도내에서는 수원에 유일하게 설치된 지방공무원 교육기관인 경기도인재개발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김대성 팀장은 “경기북부에 있는 공무원들이 서울을 지나 수원으로 교육받으러 가려면 교통 혼잡으로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그래프1 참고>. 그렇다보니 경기북부 공무원들은 경기남부 공무원들에 비해 교육을 받는 횟수가 줄 어들기 마련이다. 고양시에도 인재개발원을 마련해 경기북부 공무원들이 수원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고양에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교육 기회 확대는 행정서비스 역량강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고양 특화작목 시험장’ 설립 요구는 고양시의 지역특산품을 연구·보급해 지역농가의 안정적 수익 창출을 내기 위해서다. 특히 고양시는 경기권 장미 농가의 60%를 점유할 만큼 단일작목 최대 집산지인데도 연구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기존 경기도 산하 특화시험장에 의존해서는 고양시의 지역특화산업 육성이 더딜 수밖에 없다.
또한 특례시에 시립대학 설립 권한을 부여해 지역 맞춤형 인재 육성을 위한 거점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행안부 협의 후 자치분권위원회 심의
하지만 이러한 사무특례 혹은 권한을 행안부가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자치분권위원회는 현재 행안부장관, 기재부장관, 국무조정실장 등 3명과 민간위원 24명을 합해 2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치분권위원회는 각 부처나 광역지자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뒤 각 사무특례를 심의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특례시에게 이양할 만한 사무특례라고 결정되면 ‘지방자치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 혹은 ‘일괄이양법’에 담아서 법적 효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정부, 광역지자체로부터 이양 받을 행정 권한(사무특례)과 재정 권한(재정특례)이 무엇인지 ‘특정’되었다는 의미는 바로 자치분권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자치분권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사무특례는 단 한건도 없다.
재정특례는 아예 요구할 수도 없어
사무특례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지치분권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 광역지자체로부터 이양 받을 재정 권한(재정특례)이 확보되어야 한다. 행정 권한이 확보됐다고 하더라도 재정 권한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특례시로서는 별다른 실익이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특례시가 재정특례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는 원천봉쇄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작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한 지방차치법 전부개정안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차치법 전부개정안에는 특례시에 대해서는 ‘다른 자치단체의 재원 감소를 유발하는 특례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위원장 서영교 의원)의 부대의견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비록 부대의견으로 추가됐지만 이 한줄 문구가 4개 특례시의 자치권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 국회가 재정특례를 거부한 이유로 지자체간 재정격차 심화를 들고 있지만 사실은 한정된 재원을 특례시에 뺏길 수 없다는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대성 고양시 특례시추진팀장은 “4개 특례시 인구 450만에 비해 나머지 지자체를 합친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특례시가 유리하지는 않다. 행안부도 특례시가 재정 부문에 대해 요구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다른 지차체의 불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특례시가 재정특례 대안으로 기대했던 것은 시군이 도에 납부하는 ‘도세’ 일부를 특례시가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이었다. 경기도는 도내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세 일부를 ‘조정교부금’으로 모아서 재정이 부족한 시군에 배분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특례시가 도세 일부를 자체적으로 운용하면 특례시가 아닌 도내 타 시군에 돌아갈 수 있는 조정교부금이 줄게 된다.
광역시가 아닌 특례시라는 한계
지방자치법에는 광역지자체의 행정·재정적 자치 권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처럼 특례시도 광역지자체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일반 시군과는 차별되는 수준의 행정·재정적 자치 권한 내용을 처음부터 지방자치법에 담을 수는 없을까. 이렇게 됐으면 현재처럼 시행령을 개정하기 위해 관련 법령을 하나하나 살펴서 어렵게 진행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행안부 자치분권제도과의 한 주문관은 “제주특별자치도나 세종특별자치시는 광역자치단체와 동일한 권한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특례시는 제주특별자치도나 세종특별자치시와는 또 다른 광역지자체와 일반지자체 사이의 새로운 행정명칭이다. 이 때문에 특례시가 광역자치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광역지자체와 동일한 권한을 일괄적으로 부여하기는 힘들다. 광역지자체와 일반지자체 사이의 차지 권한을 부여하려면 사무특례를 하나하나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