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한 문재인 대통령.  
유엔 총회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한 문재인 대통령.  

[고양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며 국제사회에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의 계획은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의 분위기를 조성한 후, 10월 말 로마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담판을 짓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과 가까운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 것 같다. 또한 종전선언과 맞물려 교황의 북한 방문이 추진될 경우 한반도 평화 정착의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는 듯 싶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감안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다. 

종전선언에 대한 당사국들의 반응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3차례의 담화를 발표하며 호응했다. 24일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7시간 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다른 뉴앙스로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나 대북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다음 날 김여정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의의 있는 종전이 선언되는 것은 물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관계 개선의 여러 문제도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중국도 정부의 공식적인 논평은 없었지만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공에 종전선언이 도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애매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지속적인 외교 의지를 재차 표명했지만, 미국 조야의 반응은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떨떠름한 거 같다. 애초 종전선언 구상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 2006년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6.25 전쟁의 종전선언에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요구사항인 평화협정 체결이 당장 어렵기 때문에 중간 단계로서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해 주겠다는 발상이었다. 당시 북한의 반응은 차가웠는데 종전선언의 실효성이 분명치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북한 반응이 시원치 않자 미국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이후 종전선언이 다시 이슈로 부각된 것은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이었다.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연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종전선언이 한미 간 현안으로 부각되자 미국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실효성도 불분명한 종전선언이 미국에게만 부담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제질서를 이끌고 가는 미국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말 이상의 약속으로서 사실상 평화협정인데,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핵폐기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종전선언을 해줄 경우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한미군 철수 등 추가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미국 관계자들은 비핵화가 없는 종전선언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는 전언은 미국 당국자들의 기존 입장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폐기 조치와 맞물려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 경제제재 완화 등에서 미국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핵동결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약속 등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처는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전체 청사진과 로드맵 없이 부분적 타협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제질서를 관리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쪼개기 전술에 휘둘려 끌려 다니는 협상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이 요구한 경제제재 완화에서도 아무런 양보가 없었다. 작은 구멍이 생기면 댐 전체가 무너진다는 논리를 대고 있지만, 경제 제재가 마냥 북핵 폐기의 중심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 경제 제재는 특정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간 실행하는 정책 수단이다. 장기화될 때는 북한의 취약 계층에게 심각한 인도적 피해를 끼치게 된다. 또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마저 미적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마무리되기 전에 정전선언은 불가하다는 궤변으로 버티고 있다. 정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와 맞물려 추진되는 평화협정·북미관계 정상화 등이 어렵기 때문에 중간 단계의 대안으로 구상되었는데도 말이다.   

종전선언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전략적 연결고리이다. 또한 남·북·미 모두가 윈윈(win win)할 수 있는 카드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는 한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불식시키는 좋은 기회이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북한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카드이다. 만약 북핵 문제를 방치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유도함으로써 북한위협론을 핑계로 한 군산복합체의 호황을 즐긴다면 소탐대실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단견이 될 것이다. 70여 년 지속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으로 가겠다는 한국민 대다수의 염원을 외면하는 게 어떻게 미국에 도움이 되겠는가? 미국은 한국민들의 외면으로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잃게 될 때 과연 동북아에서 기존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바이든 행정부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게 진정한 우방이다. 미국이 협력해 남·북·미·중 정상이 만나 6.25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넘어 동북아 평화,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