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옥의 내 마음에 보내는 톡톡
[고양신문] 가족이 좋다고 하면 의아해들 합니다. 뭐가 좋냐고 묻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사람 마음은 누굴 좋아할 때 이유가 없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흘러 좋아하는 걸 왜 좋냐고 다그치면 할 말을 잊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이유를 댈 수 없을 만큼 ‘가족에 대한 아련한 마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란 말을 들으면 가슴 뭉클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감정이 차오릅니다. 나이 오십을 훌쩍 넘었는데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건 회한과 미련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어집니다.
남편은 더없이 성실한 사람입니다. 표현도 서툴고 무심해 옆집 신랑과 비교당할 때마다 ‘나는 나야!’ 하며 꿋꿋이 버텼던 그가 갱년기를 지나면서 부쩍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늘 불안했습니다. 예민한 나를 닮아 초민감자인 딸과 느림보 거북이처럼 매사 행동이 느려터진 아들은 달라도 너무 달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느림보 거북이는 내가 앞장서서 끌어당겼고, 영리하고 눈치 빠른 아이는 스스로 잘 할 거라 믿으며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느림보 아들은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를 내며 학창시절을 무난히 거쳐 진로의 닻을 내렸고, 영리한 딸아이는 경쟁 세계에서 혼자 발버둥 치다가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 했습니다. ‘느린 아이는 뒤에서 밀어주고, 빠른 아이는 조금 앞장서 끌어주었다면’하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몰랐습니다.
추석 명절이 오면 명절증후군보다는 오히려 계절성 우울증으로 마음이 힘들어집니다. 우리 곁을 황망히 떠난 아버지의 생신이 추석 하루 전이기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10년이란 세월의 공백에도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듯합니다. 기억과 감정이 함께 가니 좋은 추억만큼이나 슬픔도 깊어집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데?” 누군가 물어봐 준다면 신나게 말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말이야, 분명 말씀도 없고 무뚝뚝한데 늘 위로와 용기를 주시며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었어”라고 말이죠. 4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늘 새로운 뭔가를 찾아 알려주곤 하셨지요. “그래 해봐, 어려서부터 너는 남다른 면이 있었지”, “네가 믿는 게 중요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아빠는 반대하지 않는다”, “항상 네가 우선이란다”··· 존재 자체로 환영받고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사랑을 먹고 자란 행운아였습니다.
부모가 믿어주고 밀어주어 튼실한 자존감을 갖게 된 것은 축복입니다. 아쉬운 점은, 강요가 없으니 애써 공부 욕심을 안내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고, 취업도 작은 곳에서 만족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한치의 서운함을 내비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사람은 늦게 트일 수 있단다”라고 하셨죠. 성질 급한 나의 논리로는 잘 와닿지 않는 말씀이었는데,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결혼 이후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던 저는 아이들이 웬만큼 성장하자 자아실현을 위해 마흔 중반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연이어 박사과정을 밟았고, 지금은 좋아하는 미술과 교육을 병행하는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믿어주고, 남편이 밀어주고, 장성한 아들과 딸이 응원해주니 세상 부러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혼자가 아닌 가족이 있어 참 좋습니다. 가족이 있어 고맙습니다.
심혜옥(가족상담전문가, 일산이화가족상담센터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