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지역 정치권-한국철도공사 긍정적 협의 이어가

일제 강점기 수탈의 생생한 현장
인근에 무연고 묘지와 위령비도
“지역 활력소 될 역사문화명소로” 

고양 덕은동 쌍굴(차량 통행로로 쓰이고 있는 상굴)
고양 덕은동 쌍굴(차량 통행로로 쓰이고 있는 상굴)

[고양신문] 문학 평론가였던 고 황현산 교수는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사건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p.12)”라고 했다. 

2년 전 3.1운동 100주년을 기해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다며 온 나라 곳곳에서 각종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100년 전 만세운동 당시의 감흥을 느꼈고, 또 엄혹한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아냈던 이들의 고통을 얼마나 ‘현재’로 여겼는지는 미지수다.

일명 ‘화전 쌍굴’이라고 불리는 고양 덕은동 쌍굴(덕양구 덕은동 대덕로 52-19번지 일대)을 역사교육·문화체험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고양 쌍굴은 일제 강점기에 물자수탈을 위해 건설된 ‘경성수색조차장’에 속한 터널로 상굴과 하굴로 구성돼 있다. 당시 엄청난 식량과 각종 군수물자를 만주까지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던 관련 유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상굴과 달리 하굴은 현재 입구를 막은 상태로 폐쇄돼 있다. 
상굴과 달리 하굴은 현재 입구를 막은 상태로 폐쇄돼 있다. 
폐쇄된 하굴 앞에서 이야기하는 정한수 어르신
폐쇄된 하굴 앞에서 이야기하는 정한수 어르신

실제 6일 이른 아침 쌍굴 앞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정한수 어르신(95세)은 “석탄과 보리쌀 등 물자를 싣는 작업자, 기차 수리공, 기관사 등과 함께 이곳에서 19살부터 20년 가까이 일했다”고 증언했다. 

철도 터널인 고양 쌍굴은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해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700m 거리에 있는 지점에는 일제 전범기업이 각종 공사에 동원된 무연고자의 유해를 강제 이장한 공동묘지와 위령비가 발견되기도 했다.

2019년 당시 현장을 방문했던 이재준 고양시장은 “무연고 묘비와 강제노역 희생자와의 연관성에 대해 추가로 조사하고, 쌍굴 터널은 일제 강압과 만행의 상징으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큰 만큼 일대 정비와 관리를 통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5월 송규근 고양시의원은 ▲고양시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청산 ▲공공장소에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 사용 제한 ▲일제 강점기의 상흔을 역사교육의 장으로 탈바꿈 등을 목적으로 한 ‘고양시 일제 잔재 청산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여름에는 고양시 담당부서, 이춘표 부시장, 한준호 국회의원과 수차례 현장 미팅을 이어가며 ‘쌍굴 역사공원’ 추진에 대한 뜻을 모아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던 것일까. 해당 시설과 인근 부지의 소유자인 한국철도공사도 나섰다. 고양시의 역사교육 현장 활용 구상을 접한 공사는 수색지역 차량정비시설 구역 내에 포함돼 있는 쌍굴 주변 지역에 철도기록관과 복합기능의 역사관 설치를 추진하기 위해 (가칭)고양 쌍굴의 역사적 활용방안과 타당성에 대한 용역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개발규모, 활용방안, 재원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우수정책·조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조례에 선정돼 수상한 송규근 의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우수정책·조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조례에 선정돼 수상한 송규근 의원.

이번 조례로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우수정책·조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조례로 선정되는 영예도 얻었다는 송규근 의원은 “폐 터널을 활용해 관광지로 재탄생한 오산 별빛터널이나 광양 와인동굴 등을 참고 사례로 삼아 고양 쌍굴을 역사교육·문화체험 공간으로 조성하면 역사인식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교육체험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관광명소로 재탄생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광양 와인동굴 [사진 = 광양시]
광양 와인동굴 [사진 = 광양시]

황현산 교수는 같은 책에서 “과거를 영예롭게도 비열하게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다(p. 63)”라고 일갈했다. 과거의 미래는 결과로서의 현재이고, 미래의 과거는 과정으로서의 현재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반복하는 운명에 처한다”고 했다. 고통이 배어있는 과거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기억하고 새롭게 해석해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승화시켜내야 하는 것은 미래 세대가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현재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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