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고양신문] 당장 내일 벌어질 일도 알 수 없는데, 15개월에 걸친 독서 모임을 만들다니. 아무래도 이걸 제안한 친구도, 덥석 받아들인 나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 인정. 그리고 모집을 시작하자마자 주최 측을 포함하여 10명이 순식간에 마감된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참여자 모두 주최자와 크고 작은 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통분모를 그것 하나로만 국한할 수 없으리라. 이 모임의 키워드 ‘박완서’와 ‘한국 여성’에 이들은 본능적으로 끌렸던 게 아닐까. 짐작하겠지만 당연히 참여자 모두 여성이다.

첫 시간, 모임의 참여 동기를 물었다. 평소에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너무 좋아했기에 같은 대답은 없었다. 막연하게나마 박완서라는 작가가 한국 문학의 한 줄기임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참여했단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임에도 우리는 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까.  

나 같은 경우는 문학 편식 때문이었다. 내 10대와 20대를 사로잡은 작가는 신경숙, 은희경, 성석제, 김영하 등이었다. 그 젊은 작가들의 감각적 문체가 좋았다. 아니면 철학적 사유를 쏟아 내는 이들이 작품을 읽으며 한껏 겉멋을 흉내 내기도 했던 것 같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서사를 풀어내는 박경리와 조정래 등은 너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그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읽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면서. 

박완서의 경우에는 마흔 살의 나이에 여성지로 등단한 작가라는 점 때문에 관심 밖이었다. 나는 현재의 삶을 그려 내는 소설이 좋았다. 신춘문예가 아니라 상업적인 여성지로 등단했다는 점도 박완서라는 작가를 외면한 이유였다. 독자로서도 작가 지망생으로도 오만했다. 만약 그때 편견을 갖지 않고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감히 단언컨대, 나는 조금 더 일찍 나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인정했을 것이다. 순수한 욕망마저 부정당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슬픈 일인지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뼈저리게 깨닫는다.

첫 시간 『나목』을 읽으며,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각인시키려는 주인공 ‘이경’에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전쟁 중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경의 발버둥이 애처롭고, 한편으로는 기특했다. 모든 의지와 욕망, 희망을 거세당하고 배회자로 살아가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어서 새로웠다. 남성이 주인공인 경우 대부분 팔다리가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길거리만 헤매곤 하는데, 『나목』의 이경은 그렇지 않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감정하고 행동한다. 결코 주변상황이 나를 휘두르도록 방관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좀 되바라져 보일 수 있는데, 그 솔직한 되바라짐이 나는 박완서 문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임은 매달 첫 번째 일요일 오전에 갖는다. 11월에는 『목마른 계절』을 읽고 만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부터 이후 1년까지 서울에서 인민군 부역을 하던 여대생 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최인훈의 『광장』이 전후문학의 방점을 찍은 수작이라고 평가받는데, 난 『목마른 계절』이 그와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전후문학이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박완서 작가는 공산주의자였던 남한 여대생의 시각에서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끌려나가 개죽음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남성만큼, 멋도 모르고 인민군 부역을 했다고 우익 경찰에게 총살을 당하는 여성과 노인도 만만치 않은 피해자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전쟁터에 끌려나간 형제애도 눈물 나게 슬펐지만, 쌀 한 말이라도 얻겠다고 인민군 부역을 한 뒤 총살을 당한 여인(故 이은주)이 더 인상적인 건 내가 여성이기 때문일까. 국군은 위령제라도 지내 주지만, 그 여인의 죽음은 누가 기억할 것인가.

한국 전쟁의 이야기만큼은 꼭 제대로 쓰고 싶었다는 작가 박완서. 그분 덕분에 나는 15개월 동안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할 것 같다. 바로 여성의 서사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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