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하는 이웃- 서휘 미술작가
지난 8일 오전 10시 40분. 일산동구 아람누리 갤러리누리. 아트큐브 전시에서 29살의 회화미술가 서휘(본명 김소희) 작가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람처럼 반가운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다. 1993년 대구 출신으로 20대 초반까지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림에 소질이 있는지도 몰랐다.
“초등학교 때 힘이 들거나 속상할 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나요. 그게 전부예요. 저에게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고 전혀 생각을 안했어요” 라는 그가 미술과 인연을 맺은 건 22살 때부터다.
별 특이점 없이 초·중·고를 다닌 그는 음식을 좋아해 파티시에를 꿈꿨다. 대학도 호텔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호텔에 취업해 파티시에로 일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위험한 일이 많아 늘 조심해야 했다. 선배들의 강한 교육 방식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호텔업무로 변경했으나 그 또한 적응하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다. 마침 편찮은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고, 시간이 가장 많은 그가 맡았다. 그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렸고 점점 몰입됐다.
“할머니는 약을 드시고 어두운 방에 누워계셨어요. 할머니와 함께 있다 보니 그 기운이 점점 저에게 옮겨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어린 시절 힘들 때마다 그림을 그렸던 제 모습이 떠올랐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은 계속 그렸지만 정작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그냥 그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외로웠고 바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림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유튜브로 공부를 했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대학에 편입 결정을 한다. 다행히 서 작가의 어머니가 응원을 해줬고, 계명대 미대에 회화 전공으로 편입했다.
다행히 아버지 직장에서 교육비 지원이 돼 학비 걱정은 없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다 보니 생각보다 더 재능이 있었고, 적성에 맞았다. 회화는 새로운 미술의 세계를 서 작가에게 안내했다. “처음 작업의 주제를 잡을 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해봤어요.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건 혼자 웅크리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의 인간상이었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니 인간은 고독할 때 주변 환경과 벽을 치고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잖아요. 그건 마치 고독이라는 벽 안에 들어가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과 같았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고독은 다른 이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이에요. 그래서 관계로부터 오는 무력함과 고독에 직면한 인물에서 작업이 시작됩니다”라며 자기 미술에 그동안의 경험과 기억, 추억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2016년 5월 5일을 기억하며 그린 졸업 작품명 ‘5월 5일’이 그중 하나다.
2016년 말에 졸업 작품 전시 대구연합전을 열고 입상을 했다. 2017년 중순에는 12점의 그림으로 대구 B커뮤니케이션에서 1주일 동안 전시회를 열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2017년 졸업과 동시에 담당 교수 소개로 양주시 장흥의 레지던시에 정착한다. 레지던시는 작가들에게 거주지와 경제적 지원으로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으로 첫 타향살이의 시작이었다. 얼마 안돼 덕양구 원당(성사2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2018년에는 한 점의 그림을 그렸어요. 모두 다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그 상황을 이기기 위해 봉사활동을 했어요. 1주일에 1회 복지관을 찾아가 도시락 봉사와 반찬 나눔 봉사를 했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요. 기부 마라톤도 했어요. 몸의 컨디션도 유지하고 싶었고, 편두통을 잊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어요.”
서휘 작가는 같은 상황을 봐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현상을 기억할 때, 감정과 상황을 엮어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전한 진실이란 없다고 생각하고 그가 겪거나 느꼈던 상황을 하나의 이미지로 각색 후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그림이 완성되는 동시에 미완이 된다고 생각한다. “완성과 동시에 미완이 된 그림은 관람자가 봐줌으로써 진정한 완성이 된다고 봐요. 작가는 관람자가 자신의 상황과 엮어서 그림을 관람하고 해석하기를 희망하기도 하고요”라며 그림에 대학 철학을 말했다.
서휘 작가는 친할머니가 연명치료 후 돌아가신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의 의지와는 다르게 주변에서 도와준다고 신경을 썼지만 정작 할머니는 고통 속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동안 연명치료라는 명목하에 고통받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들었고, 당시 힘들었던 내 상황과 할머니를 연결 지어 동질감 비슷한 것도 느꼈었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통이 끝난 것에 안도했고, 위안을 느꼈어요. 이후 작품에서 동백꽃과 눈이 등장하는데 겨울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상징하고 있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 끝으로 인해 내가 새로운 희망을 얻고 다시 작업할 힘을 얻었으니, 저에게 동백꽃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에요”라고 말했다.
미국 사실주의 회화미술가 미셀돌을 좋아하는 그는 그림에 고독과 외로움을 담았지만, 최근 작품부터는 다채로운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키워드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이제는 더 넓은 세상으로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다.
서 작가의 내일이 궁금해진다. 이유는 기억을 이미지로 재조합해 인물과 감정이 남게끔 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기억을 예술로 표현하려 그는 붓끝에 물감을 묻히고 한 터치, 한 면 정성을 다해 그려 간다. 그의 그림에는 기억과 추억, 슬픔, 고통, 용서, 화해 등의 많은 요소가 담겨진 경이로움이 있다. 창작의 진실성도 가득했다. 그 진실성을 고양시민과 교감하게 해준 아트큐브와 참여 작가들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변화하며 성장하는 그의 유연한 미술로의 여행과 시간 여행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