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양신문] 가능할까? 한양문고 남윤숙 대표의 제안을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한 기관에서 지원사업을 공모하는 데 응모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강의 기간은 길고 강의료는 박한 사업이었다. 잔머리 안 굴리고 우직하게 해나가면, 무언가 성과를 낼 수 있을 성싶었다. 그때 평소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관련한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한편의 글을 써보는데, 나중에는 그 주제에 해당하는 자신만의 글을 완성한다. 내가 포기만 안 하면 가능할 법했다. 하지만 100여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올 시민이 있을까 싶었다.
이리저리 생각해보다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만났던 고양시민의 수준을 생각하면 가능하리라 여겼다. 주제는 정했다. 능력주의.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공정성을 제대로 분석하고 정확히 판단하려면 이 주제를 깊이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글쓰기 능력을 키우려면 반드시 첨삭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의 감정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학교라면 수월히 해결된다. 학생은 어차피 잘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도하는 대로 따르게 마련이지만, 성인은 자신만의 고집이 있어 잘 따라오지 않거나 저항하기 일쑤다. 어떤 면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의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모된다. 그래도 이 과정 없이는 교육목적을 이룰 수 없는지라 커리큘럼에 포함하기로 했다. 고생길이 훤히 내다보였다.
강의 기간이 긴지라 여러모로 좋았다. 일단 글쓰기 분량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책 읽고 쓰기는 일단 200자 원고지 8.5매 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 분량을 배로 늘리도록 했다. 그리고 능력주의를 주제로 자유롭게 쓰는 글은 200자 원고지 30매를 목표로 했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 글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 것인지와 개요 검토를 개별지도하는 프로그램도 넣었다. 글 쓰는 능력을 키우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되리라 자신했다.
이 수업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 있었다. 수업을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하기로 해서다. 애초부터 단단히 각오하고, 긴 기간 뿐만 아니라 만만찮은 강의시간을 견딜 분만 수업 듣기를 바랐다. 기실 이 정도의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강사가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더라도 수강생의 능력을 높이기는 어렵다. 막상 개강해보니, 짐작한 것보다는 많은 분이 수강신청을 했더랬다. 이분들 전체가 끝까지 가기는 어렵지만, 이 정도면 마지막까지 남는 분이 제법 될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모든 책임은 이제 강의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내 몫이 되고 말았다. 다시 의문이 들었다. 가능할까?
지난 10월 31일 10시 한양문고에 열 분의 수강생이 모였다. 그동안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비대면으로 강의한지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워낙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처음 뵙겠습니다고 인사해서 파안대소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고 해야 했거늘 말이다.
이날은 그동안 함께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능력주의를 주제로 쓴 최종글을 발표했다. 다들 홀가분하고 뿌듯하고 자유로워진 기분을 만끽하는 듯싶었다. 이날 발표된 글에 몇 가지 지적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원고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글을 묶어 ‘우리 시대의 화두, 능력주의를 탐구하다’라는 책을 펴내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한양문고의 도움으로 책을 편집하고 곧 출간할 예정이다. 위드 코로나 정책 덕에 책 출간을 기념할 뒤풀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때 100여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글을 써낸 분들한테 꼭 물어보고 싶다.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 하셨어요? 라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한마디 건넨다. 이분들처럼 하면 당신도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라고. 그렇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꼭 100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까. 그에 버금가는 열의만 있으면 가능하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