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돌아오는 토요일, 농장에서 김장을 하는데 올해 김장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 각별하다.

전형적인 도시 촌닭으로 살아온 나는 우연한 기회에 농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해부터 어머니의 김치가 아닌 나만의 김치를 담가먹게 되었다. 행여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은 탓일까, 아내는 물론이고 집에 놀러온 동생들까지도 다들 맛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신바람이 난 나는 이듬해부터 정말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담그게 되었고, 농사 삼 년차 되던 겨울에는 도시농부들의 김치페스티벌에 갓김치를 출품해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는 제철 김치들이 꽉꽉 들어차게 되었고 더러 양이 많을 때는 입맛 까다로운 농장 회원들에게 일부 팔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십 년 넘게 그렇게 많은 김치를 담가오면서도 나는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세 명의 여동생들에게도 김치를 퍼준 기억이 없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는 지금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유기농의 가치를 몰라주는 가족들에 대한 섭섭함이 내심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무심하거나 이기적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자꾸만 마음 한쪽이 저릿저릿 켕긴다.

농사는 생명을 돌보는 일이라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으면서도 가족들에게는 어쩌면 그토록 무심했을까 에라, 못난 놈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는 두 여동생을 농장으로 불러서 함께 김장을 하게 되었는데 동생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모습을 보는 내내 흐뭇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동생들은 함께 담근 배추김치를 바리바리 싸가면서 내년에도 배추를 잘 키워달라고 애교 섞인 부탁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동생들을 배웅하면서 나는 한 사람의 농사는 가족 모두의 것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 속이 실하게 차오른 배추들. (사진=김한수)
▲ 속이 실하게 차오른 배추들. (사진=김한수)

그렇게 해를 넘기고 나는 백팔십 포기의 배추를 밭에 심었고, 총각무도 열 평 남짓 파종을 했다. 그리고 시월 하순이 되었다. 나는 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와 막내이모까지 농장으로 불러서 하하 호호 떠들썩한 잔치분위기 속에서 총각김치와 섞박지를 담갔다. 김치를 담그는 내내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은 없었지만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애썼다며 내 손을 꼬옥 쥐었는데 애썼다는 그 한 마디가 내게는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동생들과 나는 어머니의 가난한 부엌에서 참으로 아프게 자랐다. 쌀 한 톨이 금보다 귀한 부엌에서 어머니는 늘 가슴을 졸여가며 눈시울을 훔쳐야 했다. 어린 우리들 눈에도 어머니의 서러운 부엌은 빤히 들여다보여서 나와 동생들은 어머니가 슬퍼할까봐 배고픈 내색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매끼는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든 해가 꼴딱 넘어가고 나면 밥상을 차려내었고, 그 밥을 먹고 나면 나와 동생들은 내일이 두렵지 않았다.

총각김치를 차에 실은 어머니는 나를 앞세워 찬찬히 배추밭을 둘러보며 이 힘든 걸 뭣허러 한다니 안타까운 소리와 함께 배추가 참 실하다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농장 주차장에서 차례차례 가족들을 배웅하며 오래도록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농장에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한 부엌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 10일 김장을 앞두고 첫눈이 내린 농장풍경. (사진=김한수)
▲ 10일 김장을 앞두고 첫눈이 내린 농장풍경. (사진=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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