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한 도시여행>展
8명 작가, 8개 도시, 8주간의 미술여행
현대미술 최전선 작가들의 다채로운 매력
12월 19일까지,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고양신문]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시절, 세계 8개 도시를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는 환상적인 패키지상품이 고양시민 앞에 도착했다. 티켓 가격도 5000원에 불과하니 가성비는 두말할 필요 없다.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팔팔한 도시여행’展 8명의 작가들과 세계 8개 도시로 떠나는 8주간의 미술여행이다.
비록 진짜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정은 아니지만,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들을 가이드 삼아 발리, 뉴욕, 바르셀로나, 파리 등 매력적인 도시들을 차례로 둘러보도록 구성돼 여행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아가 감성도 작업방식도 서로 다른 작가들의 예술세계는 ‘여행’이라는 테마를 보다 다채로운 시선에서 바라보는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그림에서 솟아나는 여행의 설렘
가장 먼저 만나는 김덕기 작가의 작품들은 화사한 색상과 구도로 여행의 본질인 설렘을 북돋아주기 때문에 전체 구성의 첫 섹션으로 맞춤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밝고 화사한 색상이다. 특히 원색의 물감을 촘촘한 점으로 찍어 가까이에서 볼수록 독특한 질감이 도드라진다. 남프랑스의 마을, 중국 장가계, 뉴욕의 거리 등 작가가 화폭에 표현한 여행지가 어디인지를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림 속에는 어김없이 여행하는 가족, 또는 현지인들의 일상 풍경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어 관객들도 각자가 품은 여행의 추억을 돌아보게 한다.
발리의 해변 거닐며 만난 희망
한석경 작가가 표현한 ‘발리’ 섹션으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싹 달라진다. 어두운 공간의 한쪽 벽에는 바다 영상이 일렁이고 사슴, 토끼, 매 등 다양한 신화 속 이야기를 형상화한 목각 작품들이 배치됐다. 신화의 섬으로 불리는 발리의 해변은 관객들에게 평온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여행지다. 설명을 읽어보니, 목각 작품들은 해변에 휩쓸려온 나무조각들을 갈아서 만든 것이라 한다. 신화의 해변을 떠돌다 다시 생명력을 얻은 나무들을 통해 한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일상을 벗어난 힐링, 또는 명상과 함께 찾아오는 희망이 아닐까.
뉴요커의 일상이 전하는 위로
‘뉴욕’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이규태 작가는 인스타그램에 자신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드로잉 작품을 올려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은 아티스트다. 그의 작품은 사이즈도 작고, 사용된 도구도 색연필과 잉크펜, 볼펜 등 평범한 것들이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을 코앞까지 끌어당기는 마력을 발휘한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섬세한 터치가 겹쳐진 선과 색감의 감성이 은은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가 담아낸 장면들은 뉴요커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어딘가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횡단보도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친구와 함께 강변을 산책하는 모습들은 어떻게 보면 고독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아늑해 보인다.
이방인을 반겨 준 도시 바르셀로나
여정의 또 한번 분위기를 전환한다. 이미주 작가의 ‘바르셀로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활기차고 유쾌한 느낌이 연상되는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미주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선물한 영감과 기억, 그리고 낯선 이방인에게 베푼 정서적 환대를 벽면을 가득 채운 시원스런 드로잉 속에 담아냈다. 특히 작가가 작품 구석구석마다 연필 손글씨로 직접 적어넣은 메모와 캡션들은 누군가의 커다란 추억 일기장을 함께 들춰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파리 에펠탑과 런던 이층버스
이미지를 구축하는 아티스트들의 플랫폼을 표방하는 경일메이커스는 그래픽과 패턴작업을 바탕으로 조합된 설치미술 프로젝트로 예술의 도시 파리를 소개했다. 이미지의 중심은 역시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다. 작가는 에펠탑이 가진 클래식한 조형미에 현대적 감각의 색채와 디자인을 더했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오가며 ‘여행자 시리즈’ 작업을 선보여온 최보희 작가는 낯선 도시를 방문한 여행자들을 줄을 서 있는 여행가방으로, 여행자를 태우고 떠날 이동수단을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색 이층버스로 표현했다.
나를 살리는, 여행이라는 숙명
여행지가 아닌, 여행자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테마로 삼은 이는 여행작가 박준이다. 섹션 초입의 진열대에는 500여 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박준 작가가 쓴 여행서적과 각국의 지도, 리플릿과 브로셔, 그림엽서 등이 단정하게 정리돼 있다. 이와는 달리 중앙 진열대에는 배낭속에 넣어 다녔던 물건들, 여러 나라의 동전, 여행지에서 모은 기념품 등이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듯 분방하게 펼쳐져 있다.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과 여행 전·후의 꼼꼼한 텍스트 정리가 어우러져 값진 여행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행과 관련된 물건들을 마치 정물화의 구도처럼 배치해 사진작품으로 만든 ‘여행이란 바니타스(Vanitas)’ 시리즈도 무척 흥미롭다. 바니타스는 유한한 삶의 숙명을 은유하는 물건들을 묘사한 정물화를 말하지만, 여행자의 물건을 찍은 바니타스는 “나를 살리는 여행”을 환기시킨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모래사막의 신비로운 이야기
팔팔한 세계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이승연 작가가 소개하는 북아프리카 모로코다. 그가 직조해낸 터프티드 카페트(손으로 실을 심어가며 완성하는 카페트)에는 이슬람의 문양, 아시아의 전설, 중세 비잔틴 천장화의 천사 등이 뒤섞여있다. 그런가 하면 전시장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모래사막과 소금산에도 다양한 인물상들이 놓여있어 귀를 기울이면 신비로운 이야기가 들려올 것만 같다.
누군가에겐 잊었던 여행의 추억을, 누군가에겐 새로운 여행에 대한 설렘을 호출해줄 ‘팔팔한 도시여행’은 다음 달 19일까지 이어진다. 고양시민에게는 여행경비 대폭 할인도 해 준다고 하니 굴러온 기회를 놓치지 말자.
❚한국현대미술의 최전선 <팔팔한 도시여행>展
기간 : 12월 19일까지
장소 :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주최 : 고양문화재단
관람료 :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고양시민 1000원 할인)
문의 : 031-960-00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