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람사르 지정 이후 재두루미 개체수 감소
무논에 물 못 대고, 먹이터 사라지고…
‘쌀 1공기, 물 1리터’ 시민 관심 절실
논습지는 사람의 관리 필요한 ‘인공습지’
[고양신문] 장항습지에 재두루미가 실종됐다. 10월 중순이면 장항습지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올가을 초 반짝 춥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따듯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아니면 추수를 너무 늦게 해서이거나, 수확 후 논에 물을 대지 않아서이거나….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지만 딱히 해답이 없다. 그렇게 애면글면 한 달이 지난 11월 중순 어느 날, 드디어 소식이 왔다. 첫 재두루미 가족 3마리가 갯벌에 왔단다. 득달같이 달려가 보니 갯벌에서 우왕좌왕 안절부절못하더니 또다시 사라졌다.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10여 마리 남짓의 재두루미가 논에서 먹이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작년에 비해 한 달이 늦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올해 재두루미는 그 자태가 작년과 사뭇 다르다. 논 한가운데서 늠름하게 먹이를 먹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버드나무숲 가까이에서 붙어서 연신 불안한 눈빛으로 경계를 한다. 이 정도면 재두루미 비상사태다.
비교컨대, 작년 이맘때는 잠자리 논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기업의 후원과 한강유역환경청, 고양시의 협업으로 진행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물을 대지 않는다. 지뢰 사고 이후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하다. 논에 물이 없으면 장항습지 재두루미들은 잠잘 곳이 없다. 밤이면 삵이나 유기견과 같은 포식자의 공격이 만만찮다. 재두루미는 얕은 물에서 한 다리를 들고 잔다. 그러다 잠자리로 접근해 오는 작은 움직임에도 즉각 반응하는 예민쟁이들이다. 아마도 미세한 천적의 발소리나 진동을 느끼는 것 같다.
혹자는 논에 물이 없으면 강가에 가서 자면 되지 않느냐 한다. 맞다. 강가도 잠자리로 안성맞춤이다. 물 한가운데 하중도가 있거나 큰 물골 건너 탁 트인 모래톱이 있을 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갈대가 빽빽이 들어찬 데다 물골이 말라 더는 잠자리가 없다. 설상가상 어린 버드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올라와 예전에 대체 잠자리로 사용하던 갯벌은 거의 사라졌다.
먹이도 문제다. 예전 같으면 수확을 하고 남은 떨어진 낱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논에 남겨둔 볏짚 속에 영양 많은 벌레가 그득했다. 그런데 이젠 강 건너 김포 쪽 농경지가 사라지면서 먹이터를 잃은 기러기들이 초가을부터 싹쓸이해서 논에는 먹을 것이 마땅찮다. 그나마 겨울엔 뿌려주는 볍씨라도 있지만, 오히려 가을철에 먹이가 부족해졌다. 안 그래도 차량소음에, 빛 공해에,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살기 팍팍한 도시 근교 습지인데 서식지 질이 더 나빠진 것이다.
그런데 올해 같은 시기 주남저수지와 순천만의 재두루미 수가 뚜렷이 늘었고 일본 가고시마 남쪽 이즈미도 숫자가 증가했다고 한다. 아마도 장항습지를 패스한 재두루미들이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다. 또한, 장항습지가 잠자리와 먹을 것이 없다고 소문이 난 것인지 철원에는 올해 재두루미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왔다고 한다. 장항습지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면서 오히려 재두루미들은 장항습지를 떠나버렸다. 낭패다.
장항습지 지뢰 사고로 습지 돌봄 활동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인공습지인 논은 돌보지 않으면 건조지로 바뀌고 서식지로서 기능이 소실된다. 논이 중요한 습지라고 전 세계가 결의했던 람사르협약에서는 논습지를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공습지를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논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살아가는 생물들의 서식지가 소실되고 개체군 절멸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재두루미가 대표적인 논습지 의존 생물이다. 가을철 추수 직후 물을 꼭 대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작년처럼 재두루미는 물론이고 도요새, 황새, 저어새, 개리, 큰기러기와 매화마름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장항습지에 서식할 수 있다.
우선 당장이라도 논에 물을 담아야 한다. 볍씨가 부족하니 고양시민들이 십시일반 재두루미 밥상을 차리는 데 손을 모으자. 밥 한 공기가 100g 정도이니 110만 시민들이 재두루미를 위해 1공기씩의 볍씨만 내어 준다 해도 110톤의 식량이 모인다. 10여 년 전 겨울을 나는 재두루미 수가 150마리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한 해 겨울은 충분히 먹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재두루미 잠자리에 담을 물을 모으자. 110만 시민들이 물 1ℓ만 기부하더라도 가을과 겨울, 봄까지 잠자리에 물을 담을 수 있다. 실종된 재두루미를 다시 장항습지에서 볼 수 있을지는 시민들의 관심에 달려있다.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논습지 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자연 먹이원을 가꾸는 데 힘을 기울이자. 새섬매자기를 비롯해 사초과 먹이식물과 단백질원을 발굴하자.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민과 생태학자들, 관리자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장항습지는 지금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