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주변에서 듣는 심상치 않은 말들. 예를 들면, 쟤는 천생 착한 아이라니까. 결국 예쁘면 다 용서된다. 젊은 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나 해라.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빨갱이구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걸 보니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 아냐? 서울대 출신은 역시 달라도 뭐가 달라. 전라도 놈들하고는 절대로 사귀지 마라. 민주당(/국민의 힘) 출신이 어련하겠어. 노동자 출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다니 말세야. 검사란 놈들은 죄다 권력에 미친 놈들이야.

이런 심상치 않은 말들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은 모두들 무의식적으로 낙인효과(烙印效果, Social stgma)에 언어가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낙인이 개인에게 찍히든 집단에게 찍히든, 낙인효과를 통해 이익을 받으려는 사람은 발화자일 뿐이다. 인두(印頭)를 들고 있는 사람은 뜨겁지 않지만, 인두에 찍히는 사람은 평생 그 흔적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모두들 인두를 들고 날뛰는 낙인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모두 하나의 같은 이름으로 호명할 수 없는 고유성과 복합성이 내재한다. 천생 착한 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낙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예쁘다고 다 예쁜 것도 아니고, 젊다고 모두 버르장머리 없는 것은 아니며, 학생이라고 모두 학교공부에 전념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남성도 많고, 서울대 출신 중에서도 형편 없는 인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라도 사람들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고, 민주당에 속해있다고 적폐란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그건 국민의 힘에 속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노동자도 있으며 부패한 검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싸잡아 말하지 말자. 한 두 마디로 존재를 퉁치지 말자.

보편성의 시선으로 개별성을 보면, 모든 특징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보편성으로 녹아들지 않는 개별성이야말로 권장해야할 개성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보편적 고통을 설파한 사람은 부처지만, 그가 모든 고통을 같은 값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고통은 개별자의 특징이다. 노동자의 고통, 여성의 고통, 학생의 고통, 장애인의 고통, 노인의 고통은 각기 다르다. 노동자의 고통이라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고통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꼭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개별적인 처지와 조건에 따라 고통은 다른 양상으로 다른 강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보편의 눈은 세상을 크게 보게 하지만, 개별의 눈을 떠야 세상을 세심하게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인류애라고 하는 숭고한 가치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기후 위기를 주장하면서 자신은 에너지를 풍풍 쓰는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지금은 아니다. 세계적인 쓰레기 문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 앞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

선거에 시기가 다가오니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죄다 낙인찍기이고 편가르기이다. 찍고 가르는 편에서 보자면 제 속은 편하겠지만, 찍히고 배제당하는 편에서 보면 억울하고 미칠 노릇이다. 거대담론(巨大談論)을 주장하려거든 미소담론(微小談論)에 더욱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대선판이 큰 판이지만, 그 실천은 더욱 세밀해야 한다. 심장은 펄펄 뛰고 있어도 피를 나르는 혈관이 막혀 있다면 더욱 위험해진다. 선입견과 확증편향에 더해 낙인찍기야말로 정치의 동맥경화 현상을 강화하여 사회를 썩게 하고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이다. 그 결과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