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11월 12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종전 선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반대의 논거로 종전선언을 하면 유엔사령부가 무력화되고, 국내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역적으로 진전돼 남북 간 경제협력 관계가 수립되면 찬성하겠다는 것이다. 윤 후보의 반대 논리는 과연 현실적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대안 없는 한갓 반(反)문재인 정치 공세에 불과한 걸까?
종전선언이 필요한 이유
종전선언은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 비핵화와 연동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그 대안으로 나온 구상이다. 종전선언은 2006년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해 이슈화된 후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유야무야되었다가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다시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지지부진하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제안하면서 다시 점화되어 추진되고 있다.
전선언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전략적 연결고리이자 남북미 모두가 윈윈(win win)할 수 있는 카드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국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불식시키는 좋은 기회다.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북한까지도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카드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 회생에 절실히 필요한 외자 조달을 위해 북미관계 정상화로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 입장에서는 70여 년 지속되고 있는 정전협정체제에서 비롯된 비(非)정상의 국가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필요한 조치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년 6월부터 170개 시민사회 · 종교단체들이 모여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의 종전선언 반대 논리
대선 국면에서 국민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윤석열 후보의 종전선언 반대는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반대의 이유로 내건 주장도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냉전 논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첫째, 윤 후보는 종전선언을 하면 유엔사가 무력화되어 대한민국의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유엔사는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이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만들어진 전투기구이다. 따라서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로 전쟁이 끝난 후 적절한 과정을 거쳐 비무장지대(DMZ) 관리권 등을 한국군에게 이양하고 해체됐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유엔사는 휴전 상태를 이유로 지금까지 존속하면서 정전협정 상의 권한을 남용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남북 도로와 철도 연결을 위한 남측 실무단의 방북, 비무장지대 평화구축을 위한 제반 활동 등 남북 간 협력을 수시로 방해하고 있다. 유엔사는 비무장지대 출입을 불허할 때마다 ‘안전’한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데 명확한 기준도 없다. 더욱이 안전 문제는 한국군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군이 이름밖에 없는 유엔사를 활용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윤 후보는 전쟁이 발발하면 유엔사의 법적 위상이 중요하다는 미국 측의 주장을 대변하기 전에 한국의 대통령후보로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윤 후보는 종전선언을 하면 국내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병력 감축 여론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종전선언과 주한미군을 억지로 연결시킨 비약 논리이다. 주한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종전선언과 관계가 없으며 한·미 정부가 협의해 결정하면 된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이래 주한 미군의 감축 재배치와 함께 역할 확대를 꾸준히 꾀하고 있다. 이미 기존 임무의 상당 부분을 한국군에게 이양하고 ‘전략적 유연성’아래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붙박이 군대가 아닌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주한 미군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에도 계속 남아 동북아 지역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중장기 구상이다.
북한 또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태도를 바꾸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1992년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은 주변 강대국이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탐내 침략했던 역사적 사례를 들며 동북아의 역학관계로 볼 때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좋겠다고 발언했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한미동맹은 한국에게도 필요하다. 미·중·러·일이 각축하고 있는 동북아 안보질서 하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균형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일으킨다는 구차한 논리 대신, 우리의 국익을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당당히 펼치는 게 옳다.
셋째, 윤 후보는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역적으로 진전돼 남북 간 경제협력 관계가 수립되어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앞뒤 순서를 뒤바꾼 궤변이다. 북핵문제로 남북 간 교류협력이 모두 중단돼 답보상태에 있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종전선언 구상이 나왔다는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다. 남·북·미 정상들의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동력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대선 국면에서 유력정당 대통령후보의 국민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중하다. 윤석열 후보는 그 책임에 걸맞게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