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김영민, 어크로스 刊)

[고양신문] 칼럼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김영민 교수. 스스로 전도연 배우를 닮았다고 늘 주장하는 터라 수많은 팬과 독자들이 그의 SNS에 닮은꼴 사진을 진상할 정도. 그럼 그는 또 전혀 낯뜨거워하지 않고 눈웃음 이모티콘으로 화답한다. 장담컨대 그는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한없이 가벼울 것 같은 그의 SNS에서의 활동과 달리 그의 칼럼 한 편 한 편은 촌철살인 그 자체다. 날카로움뿐이라면 따갑고 아프기만 할 텐데 신기하게도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수년 전 SNS상에서 화제가 된 그의 대표적인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런 사례다. 

명절만 되면 공부와 취직, 결혼 따위를 물어 대는 성가신 친척 어른들을 물리치는 훌륭한 대응법을 제시한 그다. 공부는 잘되고 있냐고 물으면 공부란 무엇인가로 되묻고, 취직은 언제 할 것이냐고 물으면 취직이란 무엇인가로 되묻는다. 우문현문이다.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꼰대질 좀 하지 말라는 김영민식 화법이다.

『공부란 무엇인가』에서는 개강 첫 시간 브리핑을 하며 김영민식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대학생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수업에 임하라는데, 만약 최소한의 것도 지키지 않는다면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엄마한테 이른단다. 너희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너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응수하겠다는 유치한 복수다. 그의 찌질함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면 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길 권한다,

김영민의 글에는 현학적인 표현이 난무하지 않고,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완벽하여 쉽게 읽힌다. 게다가 썰렁함과 폭소, 피식 웃음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이러니 내가 그의 글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구서를 뺀 산문집 모두를 출간 즉시 구입해서 읽었다.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어 가며 곱씹는다. 견과류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듯 그의 글도 읽으면 읽을수록 고소하고 달콤하다. 이런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정치외교학 교수가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지 궁금하다. 말도 이렇게 잘할까. 학부생으로 돌아가 그의 제자가 되고 싶다. 이 정도면 나도 중증이다.

최근 출간된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도 역시 산문집이다. 이번에도 날 웃겨 죽일 거라고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기존 책과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정치적 동물의 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정치외교학 교수다운 생각을 정리한 글인가 싶었다. 본인이 경계하는 꼰대 기질이 다분한 주지적인 분위기면 어쩌나 염려되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산문을 인용하다니. 위로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그의 인생을 속단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타인의 삶을 존중해 주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중 그 누구의 삶도 녹록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금언이다. 나도 상대도 속단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삶을 살아 냈다. 돌이켜보아 행복했다고 해도, 사실 매 순간은 가시밭길이었을 터. 따라서 우리는 삶 그 자체를 존중하고 희망해야 함을 그는 서술한다. 그리고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정치 역시 그래야 한다는 것.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정치가 아니라 반성된 삶을 살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정치의 희망을 그는 기대한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혼탁해지는 정국을 보면서, 아마도 그는 정치에 불신을 갖는  이들에게 정치적 삶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하고자 했으리라. 하지만 그 역시 우리와 다름없는 전도연 닮은 아저씨이기에 선거 때만 되면 투표소보다 달콤한 디저트나 먹으며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김민애 기획편집자
김민애 기획편집자

실컷 절망하고 분노하고 욕을 하란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시 그 지긋지긋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테니. 지긋지긋해도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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