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그 일은 지난 11월, 인천의 한 빌라에서 발생했다. 층간소음에 불만을 가진 가해자가 흉기난동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40대 피해자 엄마가 칼에 찔려 뇌사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출동한 경찰관의 어처구니없는 현장 대처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무능해도, ‘너무’ 무능했다. 권총과 테이져건, 그리고 삼단봉까지 소지한 채 출동한 경찰관들은 피해자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을’ 보고도 현장을 이탈했다고 한다. 감찰 과정에서 ‘너무 놀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경찰의 말에 그 비겁과 무능을 무슨 말로 개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처음이 아니다. 이 사건과 너무도 유사한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다.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너무나 똑같은 경찰의 무능으로 벌어진 20년 전 ‘또 다른 엄마의 죽음’이다.

때는 2001년 8월 1일 새벽, 대전의 한 식당에 강도가 침입하여 세 모녀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금품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시 33살의 젊은 엄마와 유치원생 딸, 그리고 이제 막 2살이 된 아기가 피해자였다. 그때 전화를 걸어온 피해자 가족이 수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신고하여 출동하게 된다. 그래서 벌어진 인질극 대치. 결말은 더할 나위없이 불행했다. 자기 목숨보다 딸들의 안전을 위해 발버둥치던 젊은 엄마는 끝내 범인의 칼에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이때 역시 엄마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경찰의 미숙한 현장 대처 때문이었다. 

경찰은 엄마의 목에 칼을 겨누며 범인이 도주하려는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체포 작전을 세웠다. 유사시 상황에서도 칼을 놓치지 않고자 천으로 손목과 칼을 감싼 범인이 엄마의 목을 겨누고 있는데 경찰이 진압 장비로 선택한 것은 ‘각목’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빗맞았고 이후 흥분한 강도가 끝내 엄마를 찔러 사망까지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끝이 아니었다. 이후 유가족의 폭로로 밝혀진 현장에서의 경찰 대처 방식은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은 칼을 들고 광분하는 범인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 찌를 수 있어? 찌르려면 찔러 봐. 찌르지도 못하면서 뭐하냐? 임마”같은 말이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믿기 힘든 유족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유가족이 제기한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판결문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진압장비도 없는 경찰관들이 투입돼 인질범에게 욕설을 하는 등 화를 돋우고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진압을 실시, 피해자가 인질범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게 했다”며 배상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 믿을 수 없는 경찰의 무능이 다시 또, 20년 만에 ‘또 다른 엄마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번 역시 다르지 않다. 경찰은 20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도 반성과 함께 현장 대처능력을 키우겠다며 약속하고 있다. 총기 사용 훈련도 강화하고 현장 상황에 맞는 범인 제압 훈련도 적극 실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문제는 경찰의 현장 대처 판단 능력이다. 예를 들어 어느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총을 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최소한의 공권력 집행을 위한 장비만으로도 제압이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상황 시뮬레이션 교육>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특히 1997년 탈옥범 신창원 사건 당시, 신창원 검거를 독려하고자 경찰청이 총기 사용을 독려하다가 애궂은 잡범 11명만 사망하는 사건이 있을 때 나는 경찰청장 등을 고발하기도 했다. 진짜 필요할 때는 쓰지 않고 정작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총기를 남용하는 경찰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범죄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는 엉성한 각목을 쓰는가 하면 잡범이 도주했다며 사람 붐비는 백화점 안에서 권총을 발사하던 경찰들을 보며 너무나 안타까웠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되지 않나. 변하지 않는 경찰의 현장 상황대처 능력의 미숙이 답답할 뿐이다. 방아쇠 당기는 훈련만큼 ‘상황 시뮬레이션 대처 훈련’이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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