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하는 이웃 이선호 선 리 아트 대표

[고양신문] 고양시의 핫플레이스, 보넷길. 일명 밤리단길(암센터 건너편) 골목 안쪽의 통유리창이 시원한 스튜디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태니컬 작가 이선호씨의 스튜디오 ‘선 리 아트(sun lee art)’다. 스튜디오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에는 유칼립투스가 담겨있고, 식물그림을 모티브로 한 도마, 스카프, 앞치마, 달력 등 다양한 생활소품도 전시되어 있다. 유칼립투스 그리는 작가로 알려진 이선호씨를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스튜디오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유칼립투스 그림에 끌리듯 들어왔다. “그림이 너무 예뻐서 들어와 봤어요. 이거 올리브나무죠?” “유칼립투스예요.” “어머나.” 들어서는 사람마다 마치 정해진 대사처럼 같은 말을 한다. 이선호 작가는 올리브나무 그림을 얼른 그려 그 옆에 함께 걸어야겠다고 했다.

이선호 대표는 영국 왕립식물원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 도전해 메달을 받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선호 대표는 영국 왕립식물원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 도전해 메달을 받는 것이 그의 목표다.

호주에서 만난 보태니컬 아트
이선호 작가가 보태니컬 아트를 접하게 된 것은 호주에서였다. 20년 전, 두 자녀를 데리고 호주 조기유학길에 올랐다. 영문학을 전공했던 터라 영어만큼은 두려움없이  호주로 갔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2시간 동안 일간지를 정독했다. 고등학교 일본어 수업에 보조교사로 참여하며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5년쯤 지났을 무렵, 신문에서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제니 필립이라는 호주 보태니컬 아티스트의 기사를 접했어요. 내가 꿈꾸던, 나중에 꼭 그려야지 했던 장르가 보태니컬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맬버른 보태니컬 아트스쿨 교장이었던 그녀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초보는 안 받는 학교였지만 배우러 오라고 허락을 했다. 5년 동안 매주 두 번씩 수업을 받았다.
“그분은 당시 60세였는데 제가 멜버른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부인이었어요. 학교도 멜버른 왕립식물원 옆에 있어 아름다웠고, 제가 호주를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꾸준히 배우고 습작하는 시간을 거쳐 6개월간 그린 유칼립투스 그림을 왕립식물원에서 전시했다. “팔고 싶지 않아서 값을 비싸게 적어놨는데 그 그림이 팔렸어요. 그걸 계기로 정통 보태니컬 교육을 받게 되었죠.” 그렇게 영국 SBA(Society of Botanical Arts)에서 2년 6개월의 정식교육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림이 상품으로 태어나다
호주 맬버른에 거주하는 동안 전문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유칼립투스 잎과 꽃 등을 많이 그렸고, 그림을 모티브로 실크스카프, 에코백 퍼즐, 식탁매트 등을 출시해 현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귀국 후에도 스튜디오를 열어 새로운 상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그는 “제가 그린 그림이 상품으로 탄생할 때마다 기쁨과 희열을 느껴요.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가격이 싸지도 않고 돈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니에요. 물건을 팔아 돈을 번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 그림, 내 상품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특히 올해 만든 4가지 주제의 실리콘 도마는 구입했던 사람이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여러 개 재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꽃과 작가와의 교감이 우선돼야
이선호 작가의 그림은 대부분 사이즈가 커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잎사귀 하나, 꽃의 수술 하나의 질감과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물감을 덧입힌다. 작품 하나 완성하는 데 몇 개월은 걸린다. 그런데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는 식물과 작가와의 교감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무슨 얘기일까? 그는 스튜디오에 걸린 유칼립투스 나무와의 인연을 들려줬다.
“제가 살던 마을에 50년 된 유칼립투스 나무가 있었어요. 항상 보던 그 나무가 어느 해에 유난히 열매가 많이 열렸어요. 열매들 사이의 명암과 색감이 눈과 마음에 훅하고 들어왔어요. 구청에 연락해서 그 가지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죠. 구청직원이 제가 지목한 가지를 조심스레 잘라줬어요. 집에 가져와서 몇날며칠을 이리저리 보면서 그렸어요.”
반드시 실물을 보며 오랫동안 관찰해야 그려진다. 그러다보니 계절에 맞는 식물만 그릴 수 있다. 관찰을 빠뜨린 게 있다면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한다. 
“꽃과 내가 감정의 교감이 일어나고 모양, 색깔, 빛의 각도가 나와 감정이 통할 때 그리고 싶어져요.”

지금도 꿈을 키우다
그가 이제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펼칠지 궁금해졌다. “저는 호주와 미국에서는 유칼립투스 작가로 연상되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제 한국 의 식물을 그려보려 해요.”
종 모양의 더덕꽃, 소박한 구절초와 소국에서 매력을 느껴 앞으로 우리 자생식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스튜디오를 누구나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이선호 작가가 겪었던 호주생활, 자녀교육이야기, 보태니컬 아트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하는 문화사랑방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작가로서의 꿈도 키우고 있다. 영국 왕립식물원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 도전해 메달을 받는 것이 그의 목표다. 보태니컬 아티스트에게는 명예의 전당같은 의미다. 쉼없는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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