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2021 장항습지 시민생태모니터링 보고서
갈색제비, 울새, 붉은발도요 등 39종 추가
그동안 발견된 생물 누적 무려 ‘1092종’
시민 과학 대중화, 전문화 추세 바람직
[고양신문] 올해도 어김없이 장항습지에서 시민들이 기록한 생태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39종의 새로운 종이 기록되었다. 특히 붉은가슴밭종다리, 갈색제비, 발구지, 떼까마귀, 칡때까치, 노랑때까치, 조롱이, 울새, 제비딱새와 같은 정겨운 이름의 새들과 종달도요, 메추라기도요, 흑꼬리도요, 큰뒷부리도요, 붉은발도요같이 멀리 이동하는 도요새들까지 14종이 새롭게 장항습지에 깃들었다. 이들 대부분이 봄 무논 습지에서 발견되었다.
왕비늘사초나 바늘골, 짧은털목이버섯처럼 쉽게 구별되지 않는 식물이나 버섯 종들도 새로 목록에 올렸다. 안타깝게도 유럽전호라는 외래식물이 숲속에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음과 그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음도 확인했다. 국가 적색목록에 올라있는 왕등줄실잠자리도 새로 발견되었으며, 국가기후변화지표종인 빙어도 추가되었다. 2006년부터 올해 11월까지 시민모니터링으로 기록된 장항습지 멸종위기종은 조롱이가 1종 추가되어 총 48종으로 늘었고, 장항습지 누적 종수는 1092종이 되었다.
장항습지는 시민들이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하고 있다. 사실 장항습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시민 과학은 상당한 수준에 오르고 있다. 특정 서식지에서 생물종을 기록하는 바이오블리츠나, 국립생물자원관의 시민참여 생물다양성관측네트워크(K-BON), 국립생태원 시민자연환경조사원 활동, 갯벌키퍼스의 바닷새 동시조사, 해양쓰레기 모니터링 등 국내외 활동과 성과도 크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는 각종 보고서나 학술 논문, 기사, SNS로 공유되고 있다.
이러한 시민 과학의 시작 시점은 영국에서 시민참여 조류모니터링이 시작된 1932년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1989년 225명의 미국 시민들이 산성비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빗물 샘플을 수집하는 활동에서 기원을 찾는다. 그 후 앨랜 어윈(Alan Irwin)이 시민 과학을 ‘시민 스스로 개발하고 정립한 과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면서 시민의, 시민에 의해, 시민과 함께 수행되고 통합적으로 검증된 과학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시민 과학 결과물이 학술 논문에 사용되는 경우, 대개 많은 수의 공저자들이 기재되어 화제가 되곤 한다. 비단 시민과학 논문말고도 기존 학술 논문에도 저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경우가 있긴 하다. 예를 들면, 2015년 대규모 물리학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 5154명이 저자로 참여한 물리학 논문이 나왔고 저자목록만 24페이지가 할당되었다.
하지만 학부생이나 일반인이 대규모로 참여한 논문들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네이처(Nature) 지에는 온라인 게임으로 단백질구조를 예측하는 논문에 9명의 주저자와 함께 5만7000명의 게임유저들이 공저자로 올랐다. 2015년 유전학 학술지 <G3:Genes, Genomics Genetics>에 발표된 초파리 논문에는 공저자가 1014 명이며 그 중 900여 명이 학부 학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 과학의 결과물을 분석하여 최근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 논문에는 경기북부에서 관찰된 푸른아시아실잠자리 관찰기록이 매우 비중 있게 실렸다. 에코코리아 시민과학자들이 장항습지와 파주출판도시 갈대샛강에서 2019과 20년 각 1회씩 관찰한 기록이었다. 주로 중남부지방에 사는 남방계 실잠자리가 기존 서식지를 벗어나 가장 북쪽에서 관찰된 기록이었다. 기후온난화로 점점 북상이 예상되지만 그동안은 경기 남부나 강원 남부에서만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발간 이후 올해 모니터링에서도 고양, 파주에서 총 6차례가 관찰되어 기후위기 시대 중요한 생물지표종임이 거듭 확인되었다. 다만, 이러한 중요한 시민 과학의 쾌거가 논문의 공저자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 과학자들의 노고가 정당하게 평가되길 기대해 본다.
장항습지 시민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여름, 겨울보다 봄, 가을에 조류 종수가 많았다. 이동기에 장항습지를 찾는 새 종류가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봄, 가을 이동기에 나타나는 새를 나그네새라고 부른다. 이 새들은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에 중간기착지를 징검다리처럼 이용한다. 사람도 늘 건너던 강에 놓여있던 징검다리가 없으면 오도 가도 못하고 낭패를 보는 것처럼, 새들에게도 중간기착지의 소실은 큰 위협이 된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이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람사르습지나 동아시아-대양주 물새이동로 파트너십이라는 국제적 약속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이동기에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 적시에 채워진 적당한 물, 관리자나 연구자들이 방해를 주지 않는 관리, 탐방자들이 보이지 않는 은폐시설이 제공되어야 한다. 적절한 서식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생태관광이나 생태탐방은 결국 새들을 서식지에서 몰아내는 꼴이 된다. 예기치 못한 지뢰 문제로 모든 것이 멈춘 지금, 장항습지의 징검다리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깊이 있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사람이 늘면 생태계 질은 나빠진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되새기며, 새가 자유롭고 사람이 불편한 생태탐방 방식을 고민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