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양신문] 새해 들어 위를 보지 말라는 뜻의 <돈룩업>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박사과정에 다니는 한 천문학도가 혜성을 발견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란 말인가. 기쁨은 잠시, 곧 충격에 휩싸인다. 지도교수가 혜성의 궤도를 계산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다. 이 혜성은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동안 비슷한 주제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가 떠오르면서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 법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지난해 12월 24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음 무려 1억1103만 시간이나 재생되며 94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1위에 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영화는 그동안 익히 보아온 할리우드적 문법을 깬다. 풍자와 해학으로 방향을 돌린다. 이 엄청난 위기를 맞이해 가장 우선 무엇을 해야 하나? 백악관까지 찾아가 상황의 긴급성을 알리지만, 무시당한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려 했으나 토크쇼에서는 한낱 가십거리로 만든다. 백악관에서 다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 상황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목적에서다. 인류적 위기를 해결하는 슈퍼맨으로서 미국, 이를 이끌어가는 강한 리더십의 상징으로서 대통령으로 포장해 선거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간다.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데서 일어난다. 혜성의 궤도를 바꾸려 지구에서 수많은 미사일과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는 작전에 돌입했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경제적 후원자인 기업인이 그 작전을 중단시킨다. 혜성에 희귀한 광물자원이 있는지라 이를 활용하려면 폭파해 지구에 떨어트려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인류멸종의 위기도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자본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지구는 혜성과 충돌하고 멸종에 가까운 재난에 휩싸인다. 돈과 권력이 있는 무리는 지구를 탈출하는 우주선에 타고 드디어 새로운 곳에 착륙한다. 여기서 감독의 통렬한 풍자의식이 다시 발휘된다. 돈과 권력, 그리고 명성이라는 옷으로 자신을 가렸던 그들은 이곳에서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새로운 행성에 발을 디딘다. 누구나 새로운 에덴동산의 출현으로 기대함 직하지만, 이 행성에 살던 낯선 생명체가 이들을 잡아먹는다. 통쾌하지만 뒷맛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등장인물이 실제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를 두고 즐거운 설전을 벌인다. 다 설득력이 높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비록 혜성충돌이라는 낯익은 소재를 활용했지만, 감독은 명백한 기후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지배세력이 벌이는 다양한 행태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일까?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가 인류멸종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치가 뒤집힌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여전히 무한한 성장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내 주변의 과학자는 이 영화에 나온 “상황을 똑바로 보란 거야”, “과학자 이야기 좀 들어봐”라는 노랫말에 환호했다. 인류활동이 지구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로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한다는 것은 더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논의가 세를 얻고 있다. 정치권은 탄소중립을 외치지만 구체적 실천의지를 의심받는다. 한 기후학자는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이 고작 7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돈룩업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무엇에 눈이 멀어 다음세대에게 어떤 죄를 짓는지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잖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