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코로나건 오미크론이건 시간은 흐르고 있다. 다가올 봄 3월의 입학을 준비하는 가정은 분주하다. 교육기관에 들어가는 것이니 한글을 가르쳐서 뗐고 영어학원은 다니고 있으며 서점가의 초등엄마 자기계발서도 뒤적여 본다. 특히 책가방을 사기 위한 일은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 같은 일이고 그리하여 가족이 함께 대동하게 된다.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까지 넷이 가는 것은 기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주겠다며 혹은 이모, 삼촌까지 동행한다. 초등학교 입학은 인생에 있어 돌잔치와 결혼식 사이의 큰 행사이다.
  
한 아빠가 아들 둘을 데리고 아들 책가방을 사러 갔다. 엄마는 없는지 아이 할머니가 동행했다. 아이는 진열된 책가방을 훑어보더니 검정색 가방을 골랐다. 다들 자기 가방을 사러 온 것처럼 아빠도 형도 할머니도 가방을 골랐다. 가방을 메고 다닐 아이는 검정, 나머지 가족은 남색이 좋다 했다. 특히 할머니는 남색 가방을 가리키며 하달을 내리듯 선택을 강요했다. 그러나 검정 가방을 멘 채 아이는 분명한 태도로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아이 아빠는 둘의 선택이 다른 상황에서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할머니의 고집이 꺾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제는 아빠가 아들을 설득했다. 그래도 아들은 자신이 가방 주인이라는 권리를 누리듯이 꿋꿋이 주장했다. 아들 설득에 실패한 아빠는 불편한 기색으로 계산을 마쳤다. 그러더니 판매원에게 교환하러 올 수 있음을 암시하고 퇴장한다.
  
이 무슨 절망의 메시지인가. 그 아빠는 잠시 뒤 정말 아이 손을 잡고 와서 남색 가방으로 교환을 했다. 아이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자리에서 내 편이 없는 세상을 경험했으리라. 

아이는 화를 내며 울부짖어서라도 절대로 안 바꿀 거라고 우겼어야 했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싫다고, 좋다고, 안 된다고 표현해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상대가 정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화를 내서라도 내 주장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거저 얻어지던가 자유가 거저 주어지던가. 우리 사는 세상은 투쟁이 필수다. 가족도 믿을 수 없다, 아니 가족이 더 한다.
   
맨부커상에 빛나는 소설 『채식주의자』에는 가족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어 버린 아내의 이상함을 직면한 남편이 주인공이고 처가 식구인 장인어른, 장모, 처형, 처남이 등장한다. 섭식은 생명과 관련 있어서 중요한 만큼 치명적일 수 있는 행위이다. 억지로 먹이기,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묻지 않고 먹이는 폭력 행위가 이어지는 장면들이 독자마저 고문당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자존감은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형성이 되는 게 좋다.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나의 마음을 묻는 사람, 늘 나를 지지해주는 내 편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씨앗을 심어놓고는 물도 대충 주고 햇빛을 가리면 안 된다. 

우리의 전통에서 아이는 존중받지 못했다. 어른이 먼저였다. 유교사상이 어른에 대한 예의범절을 강조하다보니 어린 아이에게는 순종이 강요되었다. 지금도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이 꽤 있을 것이다. 부모 말 잘 들어야 한다는 훈계도 그렇다. 존중을 말하는 사회는 곧 평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득권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는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다. 혹 자신의 말만 옳다고 여기는 일방적인 어르신이라면 더욱 외골수처럼 굴 수 있다. 먹으라면 먹어야지 왜 안 먹어! 라는 협박을 사랑의 행위인 양 수시로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육류를 거부하는 아내가 몹시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 여자와 결혼한 이유가 평범해서 결혼했다는데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여성은 한마디로 무난한 사람이었다. 왜일까. 자기 색깔도 자기 의견도 없이 살았던 존재감 없는 실체였다는 말이다.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이제라도 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라.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치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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