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의 전환-
영화 Don’t Look Up : 위기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
위를 쳐다보지 말라,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이 화제다. 섬뜩하지만 재미나다는 소문으로 개봉하자마자 삽시간에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한 영화다. 천문학과 대학원생과 담당 교수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고 온 힘을 다해 이를 세상에 알리려 언론에 출연하고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지만 놀랍도록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는다. 미디어는 시청률에만, 기업은 여전히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고, 대통령은 선거와 대중의 인기만 바라본다. 아무도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을 올려 보고 있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현재 위기의 기후문제를 대응하는 언론과 정치, 기업과 국가의 행태를 풍자한 블랙코미디이다.
기후위기는 10년 내에 1.5℃ 상승을 막지 못하면 티핑포인트(회복할 수 없는 시점)를 넘어서게 된다고 하는데, 과연 정부의 탄소중립정책만으로, 탄소배출권거래제도로, 또 기업의 ESG만 잘하면,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면, 쓰레기를 서서히 줄이는 것만으로 정말 해결될수 있을까?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정책을 보완하면 정말 막을 수 있을까? 수직적인, 직선적인 무한한 성장발전과 풍요를 포기하지 않아도 될까?
지금 그 영화처럼 많은 사람들이 실제 벌어질 10년 뒤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상상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 대책을 세우겠지라고 모두 설마설마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슬픈 결말이 현실임을 하늘을 쳐다보며 직면해야한다. 결국 직면한 현실은 성장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성장의 패절’, ‘탈성장’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미래비전 2037 :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전환
신년 벽두인 1월 8일 국회의장 직속기구인 ‘국가중장기 아젠더위원회’가 앞으로 15년간 한국의 나아갈 방향을 발표했다. 제목은 <미래비전 2037 :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전환>이다. 대한민국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성취했으나, 성장의 이면에서 분열과 갈등, 불공정과 양극화, 적대와 대립과 같은 사회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며 이제는 국가의 발전 목표를 위해 사회와 개인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주체로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양적 확대보다 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성숙사회’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 비전에는 3가지의 지향 가치가 있다. 첫째는 국가주도에서 자율과 분권으로 발전하는 사회, 둘째는 경제성장 중심에서 다원가치 중심, 셋째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하는 따뜻한 공동체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4대 중점목표와 각각 3가지씩 총 12가지의 중장기 아젠다를 내놓았다. 첫째는 개인역량 강화와 삶의 질을 목표로 / 건강한 국민, 안전한 사회 / 기본적인 삶, 인간다운 생활 / 전생애학습과 역량개발지원 등 3가지이다. 둘째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 격차와 차별해소 / 포용적 노동시장 3가지이다. 셋째는 페러다임 전환과 지속성장으로 / 디지털전환과 4차산업혁명 / 탄소중립과 녹색전환 / 질적성장 위한 구조전환을 의제로 하고 있다. 넷째로는 국내외 갈등조정과 협력을 목표로 / 갈등조정과 미래기획을 위한 정치 / 국제질서변화와 스마트파워 외교전략 /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공동번영을 의제로 하고 있다.
이 비전에서 ‘성숙사회’를 위해 3가지 분명한 전환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국가의 성장에서 이제 개인의 성장으로 전환, 과거 경제성장에서 이제 환경보존으로의 전환, 과거 효율성 중심에서 이제는 형평성 중심으로의 전환을 선택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기존 경제성장과는 다른 탈성장, 대안적 성장을 통틀어 다원적가치 성장을 지향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선택 ‘탈성장-성숙’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포기와 선택을 합의해야 할 시점에 섰다. 기후위기는 결국 탈성장이 답이다. 그 방법으로 우선 발전의 지표를 바꾸는 것이다. GNP, GDP처럼 생산을 지표로 삼던 과거의 가치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상품화’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돌봄, 환대, 협동, 상호부조, 공동체성 등 관계성을 성숙의 지표로 전환하는 것이다. 농업자립, 순환사회, 도시텃밭, 공동체통화, 공유, 기본소득 등 자립과 공유, 순환을 선택하는 것이다. 당장의 단기적인 이익과 이윤동기, 선거와 선거만 책임지는 정치가 아니라 200년 뒤의 7대 후손의 이익을 기준으로 정의를 세우는 직접민주주의, 인간만이 아니라 뭇생명들의 삶의 권리까지 고려한 생태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제 점점 세계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헌법에 명기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좋은 삶’이란 의미의 ‘부엔 비비르(Buen Vivir)’,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i)’가 새로운 지표가 되고 있다. 또한 남아프리카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는 상호의존과 협동의 의미의 ‘우분투(Ubuntu)’가 주목받고 있다. 탈성장을 말하면 대뜸 가난한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비난한다. 그러나 무소유가 죽음이 아니듯, 탈성장도 종말이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바른 사회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