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의 발랑까진]

[고양신문] 최근 서울의 모 학교의 여고생이 보낸 위문편지가 논란이 되었다. 여고생이 군인 장병을 조롱하는 무례한 위문편지를 보냈다는 논란이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해당 논란에 대한 논평 ‘위로는 여학생의 몫이 아니다’를 발표했다. 우리는 이 논란을 학생의 의견이 묵살되는 반민주적 학교와 성차별적이고 억압을 정당화하는 위문문화의 문제로 해석했다.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와 봉사활동을 빌미로 반강제적으로 위문편지를 썼다. 학생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는 위계적인 학교에서 위문편지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례한 말’을 편지로 보내는 것뿐이었다.

또한 위문편지 논란은 위문문화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위문문화는 지키는 이로의 군인과 지킴받는 이로의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의 소수자라는 이분법을 강화한다. 그 결과 군대에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하는 이들은 ‘이등 시민’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고, 주체적인 시민성을 훼손당한다. “군대도 안가는 여고생들이 감히 신성한 병역을 조롱한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이 논란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위문편지 논란은 여성, 청소년 등 ‘이등 시민’에 대한 무분별한 분풀이와 ‘여자도 군대가라’는 오래된 양비론에서 기인한 일종의 백래시다.

[이미지 출처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홈페이지]

위문편지 논란 이후, 우리 사회의 제도와 문화가 군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들려온다. 거대 양당을 포함한 정치세력들이 군사 월급 최저임금 보장 등 군 환경 개선과 군 인권 보장을 위한 공약을 내고 있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나 역시 ‘군인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인을 존중하는 것은 군인을 ‘우대’하는 것이 아니다. 군인을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성을 수동적 위치로 전락시키는 단발성의 ‘위문’이나 군대에 가지 못하는 구성원을 배제시키는 ‘군가산점제’가 아니다. 군대엔 위로가 아닌 변화가 필요하다.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군대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선 군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개별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조직을 만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군인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빠른 해답이다. 징병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군인 존중은 군대를 기준으로 시민을 서열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군대문화를 해체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나아가, 군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가를 위한 봉사’가 아닌 ‘주권자로의 사회적 기여’로 전환되어야 한다. 군대만이 아니라 방역 현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안전한 사회를 위한 기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안보는 국가권력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사회에 개입하고 기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또한 군인 존중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여자도 군대 가라’는 양비론처럼 모든 국민을 군인화시키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평화주의 시민단체 ‘전쟁없는 세상’에 따르면, 여성 징병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여성군인은 주로 “전통적으로 여성화”되었다고 여겨지는 비서, 교관, 간호사, 행정직 등에 배치되고 “남성 군인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부여받는다고 한다. 여군에 대한 성폭력이 연속적으로 보도되는 현실 속,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여성징병제’가 아닌 성평등하고 인간안보를 지향하는 군대 문화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사무처장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사무처장

나는 군인 존중이라는 가치를 페미니즘 백래시에 이용하는 반동적인 정치에 반대한다. 군인 존중을 위해서 평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페미니즘적인 조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명여고 위문편지 논란과 대선 후보들의 국방 공약을 계기로 진정한 ‘군인 존중’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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