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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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지난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외교안보 공약을 발표했다. 20개로 이루어진 공약은 공동번영·통일·국격 외교 등 화려한 수사로 치장되어 있지만, 핵심 내용은 이명박 정권 정책의 판박이이다. 북핵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선(先)북한비핵화, 후(後)경제지원’, 안보 대책으로 한미동맹 강화와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 등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비핵개방 3000’을 제시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단행하면 경제 지원을 통해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비핵화시킬 것인지 방법론이 빠진 허황된 정책이었다. 그 결과는 임기 내내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으로 인한 북핵문제 악화, 남북관계 단절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 격화, 연평도 포격사건 발생 등으로 인한 안보상황 악화였다.    

북핵 해법으로 내세운 ‘선 비핵화, 후 경제지원’ 

윤석열 후보는 ‘비핵·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면서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실질적 비핵화 조치 시 유엔제재 면제 등을 활용하여 경제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선 비핵화, 후 경제지원’의 입장으로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평화협정·북미관계 정상화 등)의 동시 추진’이란 국제사회의 합의를 도외시한 미국 내 강경 매파의 논리이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후 한국과 국제사회는 그간 해결을 위해 고심하며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1994년에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중폭격까지 추진했지만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판명된 후 취소했다. 그 후 북한에 대한 봉쇄·제재와 협상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30여 년의 다양한 시도 끝에 합의한 것은 외교와 협상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남·북·미·중·러·일 6개국이 2년 여 협상 끝에 합의한 ‘9.19 공동성명’과 2018년 사상 최초로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의 핵심 내용이다.

구체적인 방안 찾아볼 수 없어  

윤석열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겠다고 작정한 듯 싶다. 이명박 정부는 ABR 정책(노무현 아닌 모든 정책)을 표방하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까지 무력화시켰다. 6자회담이 무산된 데는 북핵 시설과 핵물질의 검증을 둘러싼 북미 간 이견이 직접적 원인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회담 무용론’이 자리하고 있다.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며 회담 무용론을 주장하자 그간 협상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미국 내 강경파와 일본이 가세해 회담을 좌초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는 북핵 문제 악화, 한반도 긴장과 갈등 격화로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되었다.
윤석열 후보가 내세운 공약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 정책을 사실상 반대하는 것이다. 15년 전 이명박 정부가 저질렀던 행태의 판박이이다. 북한이 싫으니 협상도 싫다는 것 외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 북한보고 “먼저 비핵화하면 경제 지원해줄게” 하면 북한이 이에 호응할까? ‘종전선언’ 반대 논리도 마찬가지이다. 윤 후보는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에 종전선언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평화협정 대신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왜곡한 궤변이다.              

실효 없이 말로만 강경한 북핵미사일 대책

윤석열 후보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성주에 있는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겠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전략폭격기·항공모함·핵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전개하고, 북한의 선제타격을 포함한 킬체인·한국형 미사일체계·대량응징보복 역량을 강화시키겠다고 한다. 
킬체인(kill chain)은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준비할 때 미리 탐지해 제압하기까지 30분 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하는 선제타격 개념이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부실한 대응으로 국민 여론이 나빠지자 급조한 것으로, 북한의 주력 미사일이 ‘액체연료’와 ‘고정식 발사대’를 사용한다는 점을 전제로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고체 연료’로 ‘이동식 발사대’에서 쏘는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다수의 군사전문가들은 한반도 상황에서 킬체인은 효용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북한 미사일이 언제 어디서 발사될지 알기 어렵고, 연료의 주입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액체연료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맹신도 마찬가지다. 저(低)고도로 1~2분 사이에 도착하는 미사일을 어떻게 요격할 수 있겠는가? 창과 방패의 무한 경쟁은 안보딜레마만 심화시킬 뿐이다. 말로만 하는 강경한 안보 주장은 안보를 더 위태롭게 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한반도 비핵화, 외교와 협상으로 접근해야

윤 후보가 내세우는 ‘비핵·번영의 한반도’는 외교와 협상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슈가 간명해지고 북미 양측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나름 성과가 있다. 이제 상대의 입장과 속마음을 알기 때문에 과욕만 내지 않는다면 협상 타결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불신과 피로감이다. 외교가 어려운 것은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합의를 이행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윤 후보는 진정한 보수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보수주의의 장점은 특정한 도그마에 매달리지 않고 실용·실리주의와 친화력이 있다는 점이다. 윤 후보는 반공·친미를 신주단지로 여기는 가짜보수의 대열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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