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입춘이 지났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야무지게 몸을 만들어두자고 해마다 다짐을 하곤 했는데 십년이 넘도록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달리기를 해볼까, 등산을 갈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궁리는 많은데 막상 문턱을 넘으려면 뭐가 그리 귀찮은지 끝내 집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가 봄을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새해가 밝기 무섭게 정말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해마다 농사일이 점점 힘에 부치면서 이거 참 곤란한데 하는 위기의식이 발동하기도 했지만 관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날선 자각이 내 몸을 집 밖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해서 걷기 시작한 게 집 뒤에 있는 야산이었다.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능선을 두어 시간은 좋이 오르내리니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져서 좋았다. 야산을 벗어나서는 새로이 거처를 옮긴 동네의 골목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일산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오릉도 두 번 걸었는데 이 좋은 곳을 왜 한 번도 찾지 않았을까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햇볕 따스한 날 서오릉의 적송 밑에서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한 번은 한강 하구의 풍경이 보고 싶어서 심학산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그냥 편하게 걷고 싶어서 난지도의 하늘공원을 찾기도 했는데 걷는 중간 중간 어린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 초등학교 이학년이었던 딸은 곤충을 좇아 하늘공원의 억새밭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여간 즐거워하지 않았었다. 나중에는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려서 한참을 업어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한산 둘레길을 걸을 때에는 글벗들과 북한산 종주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젊은 날이 떠올라서 아련한 상념에 잠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대부분 육십 대가 되어버린 그들의 주름진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문득 쓸쓸해보였다. 

하늘공원의 메타세퀘이아 숲길.
하늘공원의 메타세퀘이아 숲길.

일산에서 가장 높다는 고봉산 정상에서는 천막을 치고 음료수를 파는 여인에게서 칡즙을 한 잔 사먹었는데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사근사근 말을 건네는 그 여인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얼비쳐 보이기도 했다. 내가 국민학교 사학년 때 어머니는 꼬마김밥과 송편과 인절미를 힘겹게 관악산 계곡까지 이고 가서 해 저물도록 팔곤 했는데 내가 엄마를 돕겠다고 따라나선 어느 일요일, 단속반원들을 피해 숲속에 숨어서 가슴 졸이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봉산을 내려와서 황룡산 입구에 있는 금정굴 앞에 섰을 때는 육이오 때 총살당한 친할아버지와 형제분들이 떠올라서 두 눈을 꼭 감고 묵념을 해야만 했다. 우리 형제들은 당시의 참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노인의 도움을 받아 가매장된 친할아버지와 형제분들의 유해를 찾아서 납골당에 모셨는데 두개골을 관통한 총알자국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고봉산과 황룡산을 둘러본 나는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셨고 다음 날 가시지 않는 취기를 달래기 위해 집 뒤 야산을 속보로 두 바퀴나 돌았다. 

오늘은 농장을 품고 있는 숲길을 걸었다. 전에는 몰랐는데 내가 걷는 모든 길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걸을수록 몸이 탄탄해지는 느낌도 좋지만 휘뚤휘뚤 휘어진 길들이 품은 시간에 나를 맡기는 일이 더 좋다. 

그래서 앞으로는 농번기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다양한 길을 다잡을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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