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내일은 방학]

[고양신문] 교사에게 3월은 잔인한 달이다. 특히 담임교사는 필요한 일이라고 백번 양보해도 알리고, 걷고, 제출하고를 무한 반복한다. 수업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모니터 한쪽에 늘 자리하는 교직원 전용 메신저가 읽지 않은 메시지 20개를 어서 열어보라고 깜빡인다. 첫 수업, 첫 만남을 위해 꼭 필요한 여백이 3월 학교에는 없다. 

2021년 3월 교정에서.
2021년 3월 교정에서.

배움과 성장을 우선하려는 교사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지겠지만 ‘새 학기부터 학교는 자체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학생을 분류하고, 검사하는 방식으로 방역체계를 운영하게 된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한 가닥 희망을 지워버린다. 지침과 매뉴얼에 익숙한 학교에 자율성을 부과했으니 이제라도 고마워해야 할까?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은 잔인한 소식들이 학교 담장 너머에도 피어난다. 

일하다 죽은 이들을 없게 하겠다는 법은 태어나자마자 누더기가 되더니 결국 봄 같은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다. 전쟁을 하다가도 휴전을 했다는 올림픽 기간에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평화의 제전은 메달의 각축장이 되어 서로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얼룩지고 있으니 봄이 설 자리가 없다. 서로 봄이 되어 주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많지만 봄과 같은 사람일지 확신이 없으니 대뇌의 전두엽이 오늘도 아파온다. 봄이 오지 못해 내가 봄이 되고 싶어 위로와 지혜를 시인에게 청하니 책장 속 시집이 말을 건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시집을 덮고 다시 3월의 나에게 말을 건다. 불안한 미래로 고민하는 아이를 만나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안내하고, 그것으로 작은 성취가 있다면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혹여 실패하더라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관계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아이를 만나면 친절하고 명랑한 친구가 되어 주자. 

학급으로, 모둠으로, 번호로 인식하지 말고 온전한 하나하나의 생명으로 대해 주자. 그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교복 입은 시민’에게 감사를 표하자.

송원석 대화고 교사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질문을 던져 주고 그 어떤 답변에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던져 주자. 그렇게 봄과 같은 사람이 되어보자.

잔인한 3월에 희망이 되어 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지만 늘 그들의 봄이 아니었던가? 이제 다른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자. 우리가 봄 같은 사람이 되어 서로의 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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