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부여국수 대표

17년간 전파사 운영하다가 친구 소개로 국수 제조 배워
2002년 일산시장에 개업해 부인·아들과 20년간 운영                  

김준수 부여국수 대표.
김준수 부여국수 대표.

1959년생. 적잖은 세월을 품은 김준수 대표<사진>의 두 눈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밀가루 묻은 의자를 닦고 앉으라며 기자에게 마른 수건을 건네고는 연신 오가는 손님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일산시장 입구에서 멀리 않은 곳에 20년째 자리하는 부여국수. 이곳에 온 손님은 대부분 익숙한 손놀림으로 국수를 고르고 직접 봉투에 담기까지 한다. 오랜 단골에게서 느껴지는 품새다. 가게 앞 건조대에는 갓 나온 3.4m의 국수가락들이 한가로이 걸려있다. 
서울 이태원동이 고향인 김준수 대표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자주 다녔다. 관악구 신림동, 봉천동 등 기억나지 않는 동네까지 포함하면 10번 이상 이사를 했다. 가정이 어려워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고, 집에 보탬이 되고자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다. 만들고 고치는 데 소질이 있던 그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찾고자 20대 중반 진로를 바꿨다. 서울 남대문 인근에서 전자제품 수리를 배웠고, 남들보다 빠르게 기술을 익혔다. 얼마 되지 않아 1985년 서울 신창동에 전파사 ‘미래전자’를 개업해 남동생과 운영하다 27살에 결혼했고 운영하던 전파사에 신혼집을 차렸다. 

국수의 건조 상태를 보며 국수가 완성되는 과정을 이야기 했다.
국수의 건조 상태를 보며 국수가 완성되는 과정을 이야기 했다.

“연탄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던 집이었어요. 가게에 딸린 한칸 방이었고요. 신혼이라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집사람과 둘이 운영을 했는데 적성에도 맞고 재미도 있어서 단골도 많았어요. 1년 정도 운영하다 부천 원종동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넉넉지 않아, 간판을 떼어서 부천에 그대로 달았어요. 대기업 서비스센터가 생기기 전이어서 제법 경제적으로도 쏠쏠했고 재미있었어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부여국수의 든든한 지킴이 김대표의 부인 김미연 씨. 손님들이 "사장님 국수 왜 이렇게 쫄깃해요? 정말 맛있어서 또 왔어요"라고 말할때 많이 뿌듯하다고 했다.
부여국수의 든든한 지킴이 김대표의 부인 김미연 씨. 손님들이 "사장님 국수 왜 이렇게 쫄깃해요? 정말 맛있어서 또 왔어요"라고 말할때 많이 뿌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과 변화에는 장사가 없었다. 대기업이 서비스센터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매출은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업을 고민해야 했다. 다음 사업에 고심하던 중 가게 인근의 친구 소개로 17년간 운영한 전파사를 접고, 친구 아버님에게 국수 제조 기술을 배웠다. 생각도 못해 본 국수였지만 한눈 팔지 않았고, 제대로 한다면 잘될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한일 월드컵의 해인 2002년 부여국수라는 이름을 달고 일산시장에서 개업을 했다. 국수 품질에는 자부심이 있었고 고객들이 많이 찾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생소하고 낯선 일산시장의 분위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 몇 달은 하루 매출이 2만~3만원일 정도로 힘들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내와 자주 다투기도 했다. 다른 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아들 김희건씨도 부여국수의 일을 도우며 가업을 잇고 있다. 국수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아들 김희건씨도 부여국수의 일을 도우며 가업을 잇고 있다. 국수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매일 일찍 국수를 만들어 놓고 전파사를 했던 부천으로 전자 전기 일을 하러 다녔다. 투잡의 시간은 2년여 동안 이어졌다. 계절이 두 번 바뀌며, 손님들의 눈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맛과 친절함도 알려지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부여국수는 차디찬 겨울을 보냈고, 봄을 맞이했다.
김 대표는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딸은 호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들은 애니메이션 일을 그만두고 부여국수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다. 아내 김미연씨 까지 세 가족이 오손도손 각자의 위치에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마른국수 9가지와 생면, 칼국수, 만두피가 각 1종류로 12가지의 제품을 직접 만든다. 평상시에는 마른국수, 명절에는 만두피가 인기 많다.

부여국수를 운영하는 세가족이 나란히 자리했다.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부여국수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부여국수를 운영하는 세가족이 나란히 자리했다.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부여국수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지금껏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아내에게 고마워요. 초창기에는 ‘때려치우자’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련이 있었어요. 아내의 서글서글한 성격은 고객들이 늘어나는 데 큰 작용을 했어요. 국수 품질에 서비스까지 좋아지니 손님이 점차 늘었어요. 믿고 찾아주신 고객들께도 정말 고맙고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 대표의 곁에는 아들 김희건씨가 늘 같이한다.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은 연극을 하며  국수도 만든다. 비법까지는 아니지만, 제조 방법을 둘만 알고 있다. 부인도 모른다. 배합 비율을 따로 적어놓은 것도 없다. 몸이 기억하는 제조 방법이다. 수시로 요리해서 칼국수와 마른국수를 먹어보고 자체 평가하는 것도 김 대표의 제조 방법 중 하나다. 2~3일에 한 번씩은 먹어보고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김 대표 역시 부여국수의 팬이다.

제조에서부터 진열까지 모든 과정이 정성과 자부심으로 만들어 진다.
제조에서부터 진열까지 모든 과정이 정성과 자부심으로 만들어 진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어요. 국수가 나오는 시간은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르고 생면은 매일, 마른국수는 2~3일에 한 번씩 뽑아요. 개인 단골도 많지만, 음식점 점주들도 저희 국수를 사 가세요. 다른 곳보다 저렴하지는 않지만, 변하지 않는 품질을 신뢰하기 때문 아닐까요?”라며 뿌듯해 했다.
‘사장님 국수 왜 이렇게 쫄깃해요? 정말 맛있어서 또 왔어요’라며 손님들이 다시 찾을 때가 가장 보람차고 즐겁다는 부여국수 가족.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기분 좋은 말은 ‘맛있어요’이다.

일산시장내에 있는 부여옛날국수 전경(왼쪽). 종이로 된 국수봉지에 찍었던 '일산시장 부여국수' 고무도장.
일산시장 내에 있는 부여옛날국수 전경(왼쪽). 종이로 된 국수봉지에 찍었던 '일산시장 부여국수' 고무도장.

부여국수의 인기 비결은 특별하지 않다. 좋은 재료와 일관된 마음으로 정성껏 만드는 게 비결이다. 특별한 재료와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모를 색다른 것도 없다. 그저 열심히 국수를 뽑아주는 도구들과 제대로 만들자는 자신과의 약속뿐이다. 특히, 고장 없이 2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하는 제면기가 비결의 한 부분이다. 국수를 거는 대나무 걸이도 습도를 맞춰주는 선풍기도 모두가 비결이다. 
“여기 일산시장은 20~40년 되신 분들이 많아요. 터줏대감들이시죠. 저는 그분들과 함께 그리고 일산시장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그래야지 소상공인들도 보람이 있고, 장사할 신바람이 나실 거예요. 저도 일산시장에 당연히 도움이 되고 싶고요”라고 덧붙였다.

국수를 만들때는 서로가 말이 없다. 일상이 만들어가는 무언의 분위기애는 질서가 명확하다. 
국수를 만들때는 서로가 말이 없다. 일상이 만들어가는 무언의 분위기애는 질서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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