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봄꽃 개화 시기 예측하는 ‘생물계절학’
시민과학이 포착한 기후위기의 징후
호수공원에서 개화 관측 수년간 진행
자생종 왕벚나무, 호수공원서 보았으면
[고양신문] 꽃샘 추위가 매섭다. 그래도 봄은 온다. 봄이 오면 꽃마중 가야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번 봄에는 벚꽃이 언제나 피려나. 벌써부터 호수공원 자연학습장에 자리 잡고 서 있는 왕벚나무의 탐스런 꽃송이들이 터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올해 호수공원의 왕벚나무 개화시기는 언제쯤일까. 꽃피는 시기를 예측하는데도 과학이 작동한다. 생태학에서 ‘생물계절학’이란 분야다. 영어로는 페놀로지(Phenology)라고 한다. 식물 개화기, 결실기, 낙엽기를 관측해서 경향을 보고 예측한다. 제비가 한반도에 처음 도래하는 시기를 관측하여 통계를 내기도 한다.
누구나 예측하듯이 기후변화로 인해 봄꽃 피는 시기나 제비 오는 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개나리가 언제 피고 벚꽃이 언제 만개하는지, 산수유가 언제 절정을 이룰지를 알아야 지자체는 꽃축제 시기를 결정한다. 적기를 예측해야 식목 행사라도 기획할 수 있으니 이 분야 연구는 꼭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아쉽게도 슈퍼컴퓨터가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도 벚꽃 만개 시기는 예측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현상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시민과학이다. 넓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꾸준히 관찰하고 자료를 공유하는 방법이 핵심이다. 벚꽃이 피기 직전부터 매일 집 앞의 왕벚나무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공유 플랫폼에 올리면 끝이다. 주머니속에 카메라와 GPS와 컴퓨터가 있으니 무엇을 걱정하랴. 매년 관찰과 공유를 반복하면서 빅데이터가 되고 슈퍼컴보다 정확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일산호수공원에서 왕벚나무 관측이 수년간 진행되고 있다. 시민과학자들이 자연학습장에 건강한 왕벚나무를 표준목으로 정하고 한 가지에 꽃송이 3송이 이상 피는 개화시기를 기록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왕벚나무의 개화일은 지난 2017년에 비해 2주일가량이 빨라졌다. 2017년 4월 10일이었던 개화일이 매년 4~5일씩 빨라져 2021년에는 3월27일이었다. 개나리는 어떨까? 더욱 빨랐다. 같은 시기 무려 17일이 빨라졌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무섭다는 것을 코앞에서 관찰했다. 시민과학은 이렇게 생활에서 기후위기를 체감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이왕 왕벚나무 이야기가 나왔으니 왕벚나무 복원 활동을 소개하련다. 최근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보전하기 위한 모임이 발족했다. 이른바 ‘왕벚프로젝트2050’에는 내로라하는 지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모임의 취지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왕벚나무는 고유종으로 세계적으로 제주도와 해남에만 자생하는 식물이다. 일본산 왕벚나무와는 조상이 다르다. 유전자 검사 결과 올벚나무 꽃에 산벚나무나 벚나무의 꽃가루가 만나서 생겨난 것이 우리 왕벚나무다. 학명은 프루누스 누디플로라(Prunus × nudiflora)다. 그런데 일본산은 올벚나무와 왜벚나무가 교잡해서 만들어졌고 외래도입종이다. 그래서 이름도 소메이요시노벚나무라고 부르고, 학명도 프루누스 예도엔시스(Prunus × yedoensis)라고 한다. 그러니 일산호수공원이나 주변 가로수의 왕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벚나무란 뜻이다.
혹자는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왠 국수주의 토종타령이냐 할지 모르겠다. 자생종과 외래도입종은 유전자가 다르고 당연히 생태적으로도 다르다. 자생종은 우리 환경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고유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병충해에 강하며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변화에도 잘 적응한다. 이에 비해 단일 유전자로 복제된 외래도입종은 환경변화에 약하다. 유난히 왕벚나무 수종들이 관리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이다.
다행히도 자생종 왕벚나무가 수백그루 발견되고 후계목을 보급할 준비도 되었다고 한다. 조만간 고양시에도 자생종 왕벚나무가 가로수터널을 이루고, 생물계절을 관찰하는 표준목이 되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서, 팔만대장경 판목에 쓰일 정도로 좋은 목재로서 탄력있고 치밀해 탄소저장력도 뛰어나니, 자생 왕벚나무로 고양시 탄소중립 도시숲을 조성하자.
생태학은 자연의 관계맺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혼자 고립되어서 살수 없다’는 대전제에서 시작해서 생명과 생명, 생명과 주변 환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다룬다. 요즘은 생태계를 자연만이 아니라 사회 여러 요소까지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다. 기업생태계니 디지털생태계니 하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생태학적 사고가 자연생태계 뿐만 아니라 사회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적 소양 못지않게 생태적 소양을 갖추는 시민과학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