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그의 노동인생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태일이>는 아름답고 슬프다.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함께 일하는 어린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처지를 외면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자를 찾아가며 혼자 법전을 공부한 전태일은 사장에게 법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노동청과 언론에 호소했지만 대부분 외면당한다. 먼지와 옷감 조각이 풀풀 날리는 밀폐된 골방에서 하루 15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십대의 어린 여공들, 폐결핵에 걸린 여공은 자신의 건강보다 병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걱정한다.
이런 참혹한 현실을 <태일이>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영화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태일이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맑은 눈동자, 1960-1970년대의 서울 변두리 풍경은 남루하지만 정감 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평화시장의 모습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태일이와 함께 일하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다큐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전태일이 떠난 후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들, 특히 노동교실에서 못 다한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어린 여성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교실 폐지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의 글과 사진자료들, 중년이 된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차하면서 영화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가까운 이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여공시절의 차별과 모멸, 이에 맞선 투쟁, 이를 되돌아보면서 이들은 어린 자신의 모습을 보듬는다.
첫 장면에서 푸른 들판에 놓인 미싱 세 대, 이를 돌리는 중년의 세 여성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은 서로의 이름을 미싱으로 박아주면서 대화한다. 이름도 없이 ‘시다’ ‘00번’ 등으로 불리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순간이다. 40년 전 어릴 때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일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그들의 대화는 아프게 다가온다. 관객들은 <태일이>에서 평화시장 건물의 한 층을 위아래 둘로 나눈 공장, 먼지 가득한 좁은 골방에 쪼그려 앉아 작업하던 어린 여공들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십여 분의 증언자들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받았던 차별과 모멸감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교복 입은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래 중고생들보다 비싼 어른 버스요금을 내야했던 억울함, 여자라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해야했던 일 등은 아직도 가슴에 맺혀있다.
열서너 살 어린 나이에 하루 15시간의 노동, 추석 같은 대목에는 보름 동안 잠도 못자고 일을 해야 했다. 가난 때문에, 혹은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평화시장으로 향해야했던 어린 여공들에게 중학과정을 배울 수 있는 노동교실은 집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가혹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여성들은 노동교실을 집삼아 학업과 함께 인간적인 존엄과 노동자의 권리를 배웠다.
1977년 9월 9일, 노동교실을 폐쇄한다는 통보에 여성노동자들은 거의 생사를 걸고 싸웠다. ‘여자 전태일’이 되겠다는 이들의 결심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노동교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그날 겪었던 각자의 경험을 증언하고, 그것들은 모여서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한다. 건물을 에워싼 경찰에 맞서 창틀에 매달려 뛰어내리려 했던 어린 여공 임미경, 그를 붙잡고 말리는 동료들이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다. 경찰서 구치소에서는 빨갱이 취급당하며 갖은 모욕과 구타에 시달린다. 노동운동이 빨갱이 취급당하는 것은 지금도 낯선 일이 아니다. 대학생 피의자들과 달리 여성노동자들은 구치소 안에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고 사식은 물론 밖에서 보내준 물건도 받지 못하는 차별을 당했다. 한 분은 열흘 넘게 속옷을 갈아입을 수 없었던 괴로운 기억을 털어놓았다.
영화는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환기시키면서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준다. 치열하게 싸웠던 여성들의 눈빛은 빛났고 중년이 된 아름다운 얼굴에는 기품이 있었다.
노동자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굴레, 차별과 착취의 역사는 1970년대에서 끝난 것일까. 사회적 지위와 성별, 그 밖의 온갖 차이에 따른 차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