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태원 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태원 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양신문] 오랜 친구가 있다. 어린 시절 학교란 곳에 첫발을 같이 내디딘 이후 잠시 헤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서 짝이 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죽마고우다. 이후엔 다시 헤어졌지만 우연히도 같은 전공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각자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니 보통 우연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우린 성향이 정반대다. 그 친구가 외향적이고 쾌활한 데 반해 난 내성적이고 신중한 편이다. 하지만 주위에 큰 소리를 많이 내는 친구지만 내겐 여간해서 그러질 않는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생각과 소신을 제외하고는.

며칠 전 아침,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이틀 후 국회에서 소형 원자력발전에 대한 일을 보게 됐단다. 친구는 소재 등 성능인증 분야 원자력 이용 분야 전문가다. 아침부터 꽤나 거창한 논쟁을 벌였다. 환경과 안전을 이슈로 원자력 산업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서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정부가 개입되면 논란은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원자력 산업의 대척점에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같이 바라봐야 할 대상이 소비자라는 생각이다. 죽마고우지만 떨어져 각자 살아왔던 시간만큼이나 생각의 차이는 컸다.

비슷한 시기, 20대 대선후보들 간 TV 토론이 있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열띤 토론도 빠지지 않았다. 일반 국민에게는 매우 생소한 용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의 일종인 ‘RE100’, 유럽연합에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 범위를 정한 녹색 분류체계인 ‘그린 택소노미’ 등이 그것으로 원자력발전 포함 여부가 관심사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를 쓰는 주체는 국민인데, 그리 중요한 이슈를 왜 국민들은 모르는 걸까. 과연 몰라도 되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민들은 알 필요가 없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국제 흐름에 맞춰 대책을 마련해 국민이 알아야 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것들을 정부가 친절히 설명해 설득하고, 나아가 필요한 정책적, 기술적 지원을 하면 된다. 즉, 정부는 국민의 불편과 경제적 부담을 최소로 줄이면서 에너지 소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규제나 의무화 등 강제조치가 불가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최후의 수단이 너무 만연되어 있다. 전문가들도 여기에 편승할 뿐, 문제를 지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에너지 문제의 근본은 소비에 있다. 애당초 소비가 없다면 생산과 공급조차 필요치 않을 터다. 정부는 매년 다양한 소비에 관한 분석결과를 내놓는다. 하지만 공급과 관리를 위한 거시적 지표일 뿐, 최종 소비자인 국민을 위한 소비절약 수단은 제한적이다. 무조건 소비를 줄이고, 고효율 제품을 사서 쓰라는 게 전부다. 불편과 비용을 감내하라는 거다. 1인당 에너지 소비율이 높다는 불명예는 오롯이 국민 개인의 책임이다. 값싼 에너지로 이익을 챙기는 기업을 언제까지 국민이 지원해야 할까. 에너지 민주화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에너지 특히 전기는 생산과 소비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불일치하는 게 다반사다. 낮에 더 많이 쓰고, 여름에는 더운 오후에, 겨울에는 추운 오전에 소비가 몰린다. 재생에너지는 해 뜨고 바람 불면 전기를 만드니 제멋대로다. 생산된 현장에서 바로 쓰는 게 장점이지만 왜곡된 에너지 정책으로 꿈도 꾸기 어렵다. 원자력발전은 싸고 안정된 공급이 가능하지만 안전성이 논란이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며 합리적인 에너지 수급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국민은 보이지 않고 그들만의 갈등만 요란하다.

에너지는 시간에 따라 소비와 공급이 변하지 않고 딱 맞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효율이 높고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소비자인 국민의 협조가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소비가 많을 때는 줄이고, 소비가 적을 때 좀 더 쓰면 된다. 전력회사는 소비가 늘면 요금을 올리고, 반대로 줄면 요금을 내린다. 이 분야 전문가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전기요금에 따라 소비자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다. 물론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국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면서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다. 에너지와 기후위기를 들이대면 그만이다. 창의적인 대안을 기대하기 어렵다. 마지못해 따르는 수동적 에너지 소비와 그들만의 생산수단 잔치로는 국가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을 볼모로 잡거나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 에너지 민주화가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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