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고양신문] 2018년 ‘러시아 문학 완독 클럽’을 시작으로 2019년과 2020년은 ‘프랑스 문학 완독 클럽’, 그리고 2021년에 이어 올해는 ‘독일 문학 완독 클럽’으로 이어지는 문학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괴테’라는 큰 산을 넘었는데도 봉우리는 늘 산맥처럼 덮쳐온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경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내레이션 형식의 ‘소설’ 장르를 취하고 있는데, 독일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희곡 장르다. 『파우스트』도 읽었는데 이쯤이야, 했는데 현대 문학으로 올 때까지 희곡을 읽어 댈 판이다. 지시문이 적고 간단한 상황 제시와 대화 중심인데도 읽기가 버거운 것은 작품 대부분이 지금 독일 영토에 머물지 않고 신성로마제국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문학이 아니라 당시 서유럽사를 공부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최근 읽은 『빌헬름 텔』은 몹시 반가운 이야기이면서도 읽는 내내 머리가 좀 아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책 중 하나가 앞부분에 지도가 나오는 책이다. 내용 이해하는 것도 힘들고 꼬부랑 외국어 이름 외우기도 바빠 죽겠는데 지도까지 펴 가며 위치도 파악해야 한다니. 그럼에도! 『앵무새 죽이기』(열린책들) 이후 처음으로 지도에 인물의 이동을 표시해 가며 읽었다. 

이 희곡은 ‘피어발트 슈테테’ 호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호수가 루체른 주, 슈비츠 주, 운터발덴 주, 우리 주를 통과하여 흐르기 때문이다. 이 호수는 이야기의 시작, 즉 운터발덴 주의 비움가르덴이 성주를 도끼로 요절을 내 도망쳐 왔을 때 빌헬름 텔과 탈출하는 물줄기이기도 하고, 이야기 막바지에 빌헬름 텔이 헤르만 게슬러 태수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물줄기이기도 하다.

실제 스위스가 독립 투쟁을 벌일 때 이 호수를 중심으로 한 네 주가 동맹을 결성했다고 하는데, 이 희곡에서는 루체른이 빠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쨌든 피어발트 슈테테 호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1290년대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여러 공국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는데, 공국의 대표들은 힘없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를 황제로 세웠다. 허수아비로 세워 좌지우지할 생각이었는데, 루돌프 1세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공국과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등 가문의 영지를 확장하였다. 그런데 루돌프 1세의 아들 알브레히트가 조카에게 암살당하면서 룩셈부르크 가문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대로 몰락하지 않고 결혼을 통해 세력을 확장,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독일 남부까지 세력을 키워 나간다. 

『빌헬름 텔』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있던 스위스를 배경을 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황제(알브레히트)가 탐욕 때문에 조카의 재산을 빼앗았다가 그 조카에게 암살되는 틈을 타 마침내 스위스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독립을 쟁취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포스터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포스터.

이 희곡을 읽는 내내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 생각났다. 무지막지한 영주의 권력에 맞서는 상인이 주민들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인데, 누가 봐도 바위에 계란치기. 빌헬름은 다행히 아들을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석궁으로 명중시켜 아들의 목숨을 구하고, 역사의 흐름을 타 태수를 물리치지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민심은 강력한 권력을 이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가 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건 자신의 가족, 자신의 사람을 건드렸기 때문. 『빌헬름 텔』의 세 주 주민들도 태수가 하나같이 가족을 건드렸기 때문에 들고일어났다. 정의롭지만 평화주의자에 가까웠던 빌헬름이 세 주의 민란에 가담하지 않다가 결국 태수에게 반기를 든 것도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시험을 당했기 때문이다. 

김민애 기획편집자

민란으로 시작했을지언정 결국 나라의 독립까지 이끌어 낸 주민들은 진정한 혁명 투사다. 외세의 침입을 막고 경제적 안정을 꿈꾸며 권력을 쥐어 줬으니, 크고 작은 민란이 혁명으로 커지지 않게 하는 것은 순전히 권력자의 몫. 잊지 마시라, 우리에겐 모두 빌헬름의 석궁이 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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