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창릉동 앵봉산 얼레길

서울과 경계 마주한 고양시 동쪽 산자락
창릉동 주민자치회 팔 걷고 고양시 코스 정비 
정상 전망대 서면 고양 서남부 일대 한눈에  

[고양신문] 숲의 나뭇가지들이 아직은 무채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연둣빛 잎눈들이 금방이라도 새싹을 틔울 준비를 마쳤다. 슬슬 하루여행의 시동을 걸어봐야겠다. 지난해에는 고양누리길 14코스를 넉 달 동안 매주 걸었다. 올해는 동네 뒷산 숨은 마을길들을 찾아 나설 요량이다. 첫 번째 만나볼 길은 창릉동 앵봉산 얼레길이다. 

“이웃들과 만나는 화합의 길”

앵봉산은 고양시 창릉동과 서울 은평구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하지만 바지런한 나들이꾼들도 앵봉산은 서울 구파발에서 오른다고만 알고 있다. 서울둘레길, 은평둘레길 코스가 워낙 잘 정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봄, 창릉동 스타필드 고양 건너편 마을에서 출발해 앵봉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고양과 서울 경계선을 따라 다시 창릉동 큰골마을로 내려오는 U자형 코스가 ‘창릉동 앵봉산 얼레길’이라는 이름으로 정비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꼭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1년 만에 얼레길을 찾아 나섰다. 고맙게도 얼레길 조성에 앞장선 창릉동 주민자치회 임현철 회장과 정해현 사무국장이 마중을 나와줬다. 

창릉동 주민자치회 임현철 회장(오른쪽)과 정해현 사무국장.
창릉동 주민자치회 임현철 회장(오른쪽)과 정해현 사무국장.

“앵봉산은 높이가 235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이지만, 고양시 창릉동과 서울 구파발동·갈현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산세와 전망이 아주 좋은 산입니다. 앵봉(鶯峯)이라는 이름은 꾀꼬리가 아름답게 노래하는 산이라는 뜻이고, 매사냥을 했던 곳이라 해서 매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창릉동 주민자치회에서 ‘얼레길’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는 연줄을 단단하게 감아주는 얼레처럼 창릉동의 법정동인 동산동과 용두동 주민 모두가 이 길에서 만나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임현철 회장의 멋진 소개가 산행의 기대감을 높여준다. 

앵봉산 얼레길 출발점인 창릉동 운동장 옆 산길 입구.
앵봉산 얼레길 출발점인 창릉동 운동장 옆 산길 입구.

펜스 너머 펼쳐진 서오릉숲 

앵봉산 얼레길의 시작점은 창릉2통 자연마을 안쪽에 자리한 창릉동 운동장이다. ‘창릉동 앵봉 산책로’라고 적힌 안내판을 찾아 운동장 왼편 숲길로 들어서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정상까지는 약 2.4km. 오솔길과 계단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한가로운 숲길이 이어진다. 

산길 주변에는 군부대 훈련장을 알리는 안내판과 참호들이 이어진다. 일부 시설은 등산객이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로 변신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곳곳마다 출입이 통제됐었는데, 지금은 군사시설의 흔적들이 나들이의 또 다른 재밋거리를 제공한다.

앵봉산 곳곳에서 만나는 군사시설.
앵봉산 곳곳에서 만나는 군사시설.

오르막길 중턱에 헬기장이 나타난다. 넓게 트인 마당에 푸르른 잔디가 돋아나면 여러 명의 산악회원들이 돗자리 펴고 둘러앉아 식사를 하기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헬기장과 야외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체육시설을 차례로 지나면 등산로 왼쪽으로 철망펜스가 길게 이어진다. 펜스에 붙은 ‘경고문’이 문화재보호구역과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무단 출입하면 처벌당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문화재청과 군부대, 경찰서가 함께 붙인 안내판인데, 이왕이면 부드러운 말투로 내용을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펜스 너머로는 조선왕릉 숲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서오릉숲이 앵봉산 동남부 사면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졌다. 소나무와 서어나무, 참나무류가 왕릉을 호위하는 숲의 일원답게 당당한 기풍을 자랑하며 어깨를 걸고 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오른쪽 펜스 너머는 서오릉숲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오른쪽 펜스 너머는 서오릉숲이다.

정상에서 만난 반가운 표지판

산길을 오르는 중간중간 주변의 풍광이 숲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들이길에 동행한 정해현 사무국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앵봉산을 오르다 보면 처음에는 창릉동과 삼송동 일대가 조망되고, 이어 지축동과 구파발동, 그리고 고양의 주산인 북한산의 아름다운 산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최고의 전망은 정상 바로 아래의 전망대에서 펼쳐지는데, 봉산과 망월산, 한강과 덕양산으로 둘러싸인 고양시 서남부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등산로 중간 쉼터에 놓인 벤치.
등산로 중간 쉼터에 놓인 벤치.

쉬어가기 좋은 자리에는 벤치나 피크닉테이블이 반갑게 놓여있다. 소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인다. 서삼릉숲 솔향을 가득 머금고 올라온 산바람이 상쾌하고, 따스한 봄햇살을 타고 흐르는 새소리가 평화롭다. 똑똑똑…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작은 산새가 부리로 나무줄기 틈새를 연신 쪼아대며 먹이를 찾고 있다. 이름 모를 산새의 앙증맞은 몸짓이 앵봉산을 찾아준 나들이꾼을 환영하는 듯하다. 

얼레길이 산자락 동편 구파발역에서 올라온 서울둘레길과 만나면 본격적으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나무계단에 숨이 차오를 무렵,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에 도착한다. 아찔한 바위언덕을 딛고 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아쉽게도 봄날씨 특유의 흐린 대기 때문에 시야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고양시 서남부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앵봉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전망대. 
앵봉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전망대. 

산자락 아래 서오릉숲과 군부대가 보이고, 서오릉로 지나 용두동과 창릉신도시 편입 구역,  향동지구, 도래울마을, 삼송지구, 그리고 더 멀리 화정지구와 백석동 와이시티에서 시작되는 일산신도시도 건너다보인다. 앵봉산 등산로에 설치된 대부분의 안내판과 이정표는 서울시 시설물이 차지하고 있지만, 전망대 조망만큼은 온전히 고양시 차지다.  

전망대 바로 위 앵봉 정상은 방송국 전파를 송신하는 철탑이 차지하고 있다. 철탑 아래 공터에 ‘앵봉산 얼레길’ 약도를 예쁘게 그려 넣은 표지판이 서 있다. 창릉동 주민자치회에서 앵봉산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담아 설치했다고 한다.  

창릉동 주민자치회에서 앵봉산 정상에 설치한 표지판을 정해현 사무국장이 가리키고 있다. 
창릉동 주민자치회에서 앵봉산 정상에 설치한 표지판을 정해현 사무국장이 가리키고 있다. 

호젓한 오솔길 따라 큰골마을로 하산

하산길에선 얼레길과 서울둘레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길을 잘 찾아야 한다. 구파발역을 향해 내려가는 오른쪽길은 넓은 등산로지만, 직진해서 창릉동 큰골마을로 가는 길은 숲길을 걷는 재미가 가득한 호젓한 오솔길이다. 골짜기 아래로 앵봉산 능선에 둘러싸인 1·2·3 골프클럽의 필드도 눈에 들어온다. 반갑게도 최근에 녹지과에서 조성한 안내판과 이정표 팻말이 나타나 길을 잃지 않게 돕는다. 하지만 앵봉산 얼레길이라는 이름 대신 ‘앵봉산 산책로’라고 표기를 해 놓았다. 마을 주민들이 애정을 담아 만든 이름을 시 행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산길은 구암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 큰골마을에서 마무리된다. 큰골에서 출발점까지는 고양대로를 따라 약 1km를 걸어 원점으로 돌아오면 되는데, 중간에 다양한 메뉴의 식당들이 이어진다. 마음에 드는 식당을 골라 마당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후 하산길에 뒤풀이 식사를 해도 좋겠다. 

서울둘레길과 앵봉산 얼레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설치된 이정표.
서울둘레길과 앵봉산 얼레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설치된 이정표.

주민 스스로 조성한 우리마을 나들이길

새봄 나들이를 시작한 앵봉산 얼레길. 5km라는 코스 길이도 반나절 나들이에 적당하고,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 전망 포인트의 경관도 여느 둘레길 못잖게 만족스럽다. 반면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코스가 헷갈리기 쉬운 갈림길 서너 곳에는 당장이라도 안내판을 세웠으면 좋겠고, 전체 코스의 명칭과 안내도 통일성을 좀 더 살렸으면 좋겠다. 아울러 얼레길이 통과하는 사유지와 관련해 풀어야 할 문제들도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 스스로 마을의 특성과 정체성을 담아낸 나들이길 코스를 개발한 바람직한 사례를 본 것 같아 반나절 산행이 무척 즐거웠다. 창릉동 주민자치회는 앵봉산 얼레길에 이어 ‘고양 밥할머니 지혜로’와 서오릉로 건너편 ‘봉산 새소리길’도 조성을 마쳤다고 한다. 다음번 나들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얼레길을 오르다 만난 헬기장.
얼레길을 오르다 만난 헬기장.
오르막 중턱에서 내려다 본 구파발과 지축지구 풍광. 날이 흐려 북한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르막 중턱에서 내려다 본 구파발과 지축지구 풍광. 날이 흐려 북한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정상 전망대에서 일산 방향을 조망하는 기자의 모습을 정해현 사무국장이 사진으로 찍어줬다.
정상 전망대에서 일산 방향을 조망하는 기자의 모습을 정해현 사무국장이 사진으로 찍어줬다.
앵봉산 둘레길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구암사. 
앵봉산 둘레길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구암사. 
앵봉산 얼레길의 종착점인 동산동 큰골마을의 표지석. 
앵봉산 얼레길의 종착점인 동산동 큰골마을의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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