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석 칼럼 [내일은 방학]
[고양신문] 하루 확진자가 60만을 넘어섰다. 우리 반만 해도 현재까지 25명 중 10명이 누적 확진되었으니 매일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다. 출근하지 못하는 교사들도 매일 생겨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루가 참 길다. 1교시 수업 종은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김없이 울리고 그렇게 일상은 오늘도 시작된다.
학교가 배움, 돌봄, 방역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갇혀 있을 때, 위기를 극복해 줄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 선거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같은 사회 교사들에게 선거 기간은 대목이다. 마침 ‘정치와 법’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니 안성맞춤이 따로 없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가 포함된 상호 토론 수업은 선거법상 금지되어 있으니 선거 수업은 늘 미완성이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위로하면서 수업을 계획한다.
너튜브의 도움을 받아 한 표의 소중함을 약간의 과장과 유머로 버무린 후 국뽕으로 마무리한 2008년 작 영화 ‘스윙 보트’로 수업을 열었다. 당연히 결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야 아이들도 주목한다. 말랑해진 마음으로 20대 대통령 후보들의 각 분야 주요 공약을 분석한다. 준비물은 선관위에서 보내준 각 후보의 정책공약 유인물. 이미 버려졌다면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아예 봉인된 채로 유인물을 가져온 학생들도 여럿 보인다. 동거하는 유권자들이 너무 바빴나 보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대선 유인물을 언박싱하는 눈빛이 반짝인다. 14명의 후보 중 4명을 임의로 선택하여 정치, 경제, 외교, 기후환경, 교육, 통일 분야 공약을 요약 정리한 후 자기 생각을 짧은 댓글로 더한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슈였는지 교육 관련 공약 분야에서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섭섭함이 교실을 한 바퀴 돌아 공기청정기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선 하루 전 이 모든 수업이 끝이 났고 마지막으로 청소년 모의 투표 사이트를 안내했다.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이 매년 자체적으로 모의 투표 사이트를 만들어 선거 당일 투표에 참가한다. 그들의 생각과 이들의 생각이 같은 적도 있고 다른 적도 있었다. 올해의 결과는 대선 다음날 공개된다. 이미 결과는 나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2022년 대통령 선거 청소년 모의 투표를 검색하시면 된다.
선거가 끝난 다음 날, 세상은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의 뒷이야기를 쏟아냈다. 승리한 자를 지지한 이들의 기대와 패배한 자를 지지한 이들의 걱정이 바람을 타고 교실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 너무 정신이 없다. 그래도 수업은 진행되니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학생들과 선거 수업 마무리를 함께 했다.
“어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 헌법 66조에 나와 있지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중략… 헌법에는 많은 헌법기관들이 열거되어 있어요. 대통령, 국회의원, 국무총리. 대법원장, 감사원장, 선거관리위원장 등. 그런데 헌법에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기관은 어디일까요?”
헌법 여기저기를 찾아보며 대통령, 국회의원이 언급된 횟수를 찾아보던 아이들은 빙그레 웃으며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
“국민이오.”
지금 우리 학교의 아이들은 진짜 주인이 국민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성장하기 위해 시민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시민으로 교문 밖을 나설 때, 진짜 시민이 되어 있는 어른들을 많이 만나길 희망한다. 이것이 내가 아이들과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