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호 고양시정연구원장
정원호 고양시정연구원장

[고양신문] 지나간 대선에서 0.7% 차이라는 역대급 박빙의 득표결과와는 달리 양강 후보들 간 정책의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민주당 후보의 공약 중에 특징적인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기본소득’이다(물론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만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민주당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은 연령대별, 집단별로 다소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기본은 “모든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의 숱한 논란을 뒤로 하고,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유재산 제도하에서 살고 있는데, 모든 사유재산은 정당한 것인가? 대표적으로 토지를 보자. 일부 국공유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토지는 개인의 소유인데, 문제는 그 토지를 소유자 개인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지는 그저 자연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졌을 뿐이며, 따라서 원론적으로 토지는 특정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공유재산)이고, 그래서 모든 구성원은 해당 토지에 대해 1/n만큼의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일정 분량의 토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누구는 전혀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물론 정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류가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구축해온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한다면, 그 토지에서 나온 수익의 일부라도 공동체에 납부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배분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정의롭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공유재산(토지 외에 천연자원, 자연환경, 심지어 축적된 인류의 지식도!)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권리이다. 민주당 후보는 기본소득이 경제정책이자 복지정책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것들은 기본소득의 효과일 뿐이지 본질은 권리이다. 다시 말하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권리는 하루아침에 원하는 만큼 확보되지 않는다. 재산이 있는 남자에게만 부여되던 보통선거권이 여성과 흑인에게도 부여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으며, 흑인이 버스에 앉는 것도 수십 년이 걸렸다. 이처럼 권리는 기득권자와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며, 기본소득 또한 공유재산을 사유(私有)하고 있는 기득권자들로부터 공유재산의 수익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놓게 하는 쉽지 않은 싸움을 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혹시 기본소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그 재원도, 따라서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금액도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연령대에만 지급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2019년부터 경기도가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1년에 100만 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한 예이다. 

그렇지만, 나는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소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하게는 어릴 때부터 자신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득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권리의식은 성장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많은 권리를 상상하고 지지하는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모에게서 ‘받는 용돈’이 아니라 ‘자신의 돈’을 어떻게 쓸지 궁리하는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경제주체로서 자립심을 키우는 교육효과를 볼 수도 있다. 용돈 주기도 버거운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덤이다. 

선례가 없는 순전한 상상만은 아니다. 충북 보은의 판동초등학교는 2020년 10월부터 전교생에게 매주 2000원(2021년 12월부터 3000원)의 ‘어린이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고, 대전 대덕구는 2021년 10월부터 관내 초등학교 4~6학년생에게 매월 2만 원의 ‘어린이 용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그 효과는 비단 어린이 개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까지 미치고 있다.

2022년 특례시로 새롭게 출범한 고양시에도 이런 ‘어린이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어떨까? 2022년 2월 현재 고양시의 초등학생 연령(8~13세)은 약 5만8800명인데, 이들에게 매월 2만 원을 지급하면, 연간 소요예산은 약 141억 원이다. 고양특례시가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 ‘어린이 기본소득’이라는 용어가 밋밋하다면, ‘새싹 기본소득’은 어떨까?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