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인물 - 권종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고양파주지사장
산업안전 분야에 30년 가까이 종사
개발도상국에 안전보건시스템 전수
재해사고 감소 위해 관계기관 협력
“중소사업장에는 지원도 강화할 것”
[고양신문] IMF에서 2020년 발표한 GDP 통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0위로 이제 분명한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해 말 기준 828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4위다.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며 올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채석장 붕괴사고, 건설현장 붕괴사고, 공장 화재폭발 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런 한편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선회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올해부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고양파주지사를 이끌고 있는 권종규 지사장을 만나 우리나라 산업 안전의 현황과 개선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 고양파주지사장으로 부임했는데 각오를 밝힌다면.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산업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더 높아졌는데, 대규모 철도 건설과 도시 개발 등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고양·파주지역에 지사장으로 부임해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우리 지사는 경기북부지사에서 분리되어 작년 10월 개소했다. 고양·파주 지역 내 사업장과 근로자의 규모를 고려해 볼 때 조금은 전문인력 충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고용노동부, 지자체 등 관계기관들과 협력해 지역 산업현장의 재해예방, 특히 사고사와 중상해 재해를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간 공단에서 주로 국제업무를 담당했던데, 공단 30년사에 대한 전체적인 총평과 더불어 국제협력 분야에서 이룬 주요성과는 무엇이고, 국제적 기준에서 봤을 때 한국 안전보건업무의 역량과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는지.
공단은 1988년 설립 초기 독일 일본 등으로부터 전문가 자문을 통해 안전보건 기술력을 축적해 기본 시스템을 갖췄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 산재예방정책 추진, 산업현장의 재해예방 노력, 국민의 안전보건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에 힘입어 꾸준하게 인프라를 구축하고 체계적인 기술지원을 시행해 왔다. 공단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명실상부한 국내 유일의 산재예방 공공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
이뿐 아니라 공단은 이제 국제적으로도 신뢰받는 글로벌 산재예방전문기관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공단이 최대 규모의 국제안전보건행사인 세계 산업안전보건대회(2008년)와 국제산업보건대회(2015년)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는데, 이는 국제사회에 우리 공단과 한국의 안전보건 역량과 수준을 높이 인정받는 좋은 계기가 됐다.
아울러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등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안전보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국의 안전보건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제도와 기술력을 롤모델로 삼아 전수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에 공단에서는 그동안 꾸준하게 초청연수, 현지기술자문, 기술정보 등을 제공해 아시아지역의 산업안전보건 중심국가 역할을 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공단도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와 함께 고양·파주지역에서 이에 관한 설명회도 진행했는데, 설명회에서 전달한 핵심적인 내용의 설명을 부탁드리고, 이 법의 시행 전후 사업장 현장의 분위기와 대응은 어떠하다고 느끼고 있는지.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나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법이다.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과 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안전보건조치가 철저히 이루어지도록 해서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사업장으로부터 관련 문의가 많아졌다.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아지고 있고, 이는 앞으로 산업현장에 실질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축되는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공단은 사업장에 지속해서 안전관리에 필요한 인력·조직·시설·장비·예산 등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중처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3년 유예,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 배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이 3년 유예(2024.1.27.부터 시행)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이 배제된 부분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연착륙을 위한 완충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체 산재 사고사망자 가운데 80% 이상이 이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등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발생 현실을 고려할 때 강력한 법 집행과 감독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사업장은 안전 예산이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안전관리체계 구축이나 이행 능력이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업장 스스로 안전관리 능력을 배양하고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좀 더 준비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5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실질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정착되어 가면 50인 미만 사업장도 이에 빠르게 부응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지난달 21일 전경련을 포함한 6개 경제단체와 도시락 회동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중대재해법은 글로벌 기준에 맞게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화답했다. 노동계에서는 상징적으로 중처법이 손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고, 산업재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여전히 따가운 것이 현실인데.... 일선 현장 산업안전 책임자로 입장은 어떠한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재계에서는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우려와 더불어 제도적 보완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노동계에서는 이는 법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법 시행 초기인 만큼 정부의 산업재해 감축을 위한 강한 의지, 그리고 법 시행 이후에도 지속해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해 보면, 아직은 일부 불편한 부분들이 있더라도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 충분한 노사의견 수렴을 거쳐 보완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근로자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의 근본적 예방을 위해서는 안전보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조속히 정착되고 이행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정 모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처법 시행으로 산재감소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처법이 산재예방을 획기적으로 감소하는 중추적인 역할(하드캐리)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서비스업체가 많은 고양, 제조업체가 많은 파주 등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주요 산재의 특성이 조금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고양, 파주 각 지역 산업체의 현황, 주요 산재 발생 현황, 발생원인은 어떠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고양파주지사의 프로그램과 단기-중장기 활동계획을 소개하면.
우리 지사의 관할지역은 고양시와 파주시로 사업장이 7만9320개소가 있고, 노동자는 48만9308명이 일하고 있다. 건설 현장은 고양시, 제조 사업장은 파주시에 조금 더 많이 소재하고 있고, 서비스 사업장은 고양시에 약 70%가 있다. 특히, 제조업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약 98%, 건설업은 20억 미만 사업장이 약 87%, 서비스업은 50인 미만 사업장이 약 99%로 소규모 사업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고양·파주의 산업재해자 수는 3049명이며, 이 중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22명이다. 특히, 건설업에서 13명이 발생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해 동안 노동자 1만 명 당 업무상 사고 사망자수 비율인 ‘사고사망만인율’의 경우 고양파주지역은 0.450으로 우리나라 평균 0.427보다 높은 실정이다. 최근 5년간 사고사망자는 건설업, 서비스업, 제조업 순으로 발생했으며, 건설업은 추락, 제조업은 끼임, 서비스업 넘어짐에서 사고재해가 잦았다.
올해 우리 지사는 고양·파주의 사고사망 재해에 대한 실태 파악을 해 사고가 자주 나는 곳, 지원이 필요한 곳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고양·파주의 사고위험이 큰 건설 현장과 제조 사업장에 대해서는 불시에 점검하는 ‘패트롤 현장점검’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산업현장의 근원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중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재해예방 시설개선 보조금 및 융자사업, 안전투자 혁신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고양지역에서는 GTX-A 노선 2개 공구, 대곡-소사 철도 2개 공구, 덕은지구, 장항지구 등이 공사 중에 있고, 향후 창릉 신도시도 계획 중에 있다. 파주지역은 GTX-A 노선 2개 공구, 수도권 제2순환도로 6개 공구, 파주운정3지구 등이 공사 중이다. 그 과정에서 각종 산재나 사고가 예상되는데, 예방을 위해 지사에서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방책은 무엇인가.
현재 고양시는 철도 4개 현장, 도시 및 택지 지구 15개가 개발 및 계획 중에 있다. 대형 건설현장은 안전보건시스템이 대체로 잘 갖추어져 있으나, 크고 작은 위험요인도 많아 추락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 지사는 노동부 고양지청 및 관계기관 등과 감독지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지원 등의 협업사업을 추진하고,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 발주현장에 대해서는 안전신호등 사업을 통해 현장점검 후 점검결과를 발주처에 통보해 미비점을 개선토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중소규모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안전보건지킴이 순찰을 강화하고, 건설업 공정별 사고사망 체크리스트 8000부를 제작해 사업장에 배포할 계획이다.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 있거나 혹은 안타까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지난 5년간 정부는 ‘산재사고 사망 절반 줄이기’ 전략을 집중적으로 추진한 결과, 산재사고 사망자가 964명(17년)→971명(18년)→855명(19년)→882명(20년)→828명(21년)으로 약 14% 줄었다. 이는 연간 3%를 줄이는 수준으로 비록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노력하면 점진적으로 사망사고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한동안 코로나 펜데믹으로 산업현장을 방문해 기술지원을 하기 어려웠던 점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대면 방문을 부담스러워하고 점검이나 기술지원을 거부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