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자유농장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의 회원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많은 회원들 가운데서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종일 농장에 머무르며 적지 않은 규모의 텃밭을 일구는 선배가 있는데 일하는 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육십오 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그는 평생을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살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진 그해 여름 정년을 코앞에 두고 교단을 떠나 농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삼년의 시간이 흘렀고, 선배와 함께 교사생활을 했던 동료들도 하나 둘 정년퇴직을 했다. 그런데 선배는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일부 친구들이 새로운 삶을 찾지 못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본인도 모르게 삼식이가 되어 아내와 다툼을 벌이며 우울해하고 있다면서 마음 아파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은퇴 이후 이렇다 할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답답한 일상을 무료하게 견디는 이들이 적지 않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다양한 직군에서 오랜 세월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왔지만 은퇴를 하는 그 순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 마음 아픈 건 평생 해온 일 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이 육십을 넘겨서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고, 노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은 은퇴자들이 찾아볼 수 있는 일자리는 경비원이나 배달원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게 없다.
농장에는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회원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우리 눈에는 정년퇴직한 이들의 삶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친구들도 목전에 닥친 은퇴를 앞두고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은퇴가 없는 내 삶이 부럽다는 소리를 툭툭 내뱉으며 앞날이 너무 막막하게 여겨진다는 하소연을 심심찮게 늘어놓곤 한다. 그런데 정년퇴직 이후의 삶에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우리 세대뿐만이 아니다.
에너지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 매제는 오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요즘 들어서 부쩍 이런저런 불안감을 언뜻언뜻 내비친다. 그런 그에게 내가 가까운 미래에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서 그간의 내 경험을 밑천 삼아 울금농장을 만들고 가공시설을 세워 노후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흘렸는데 그 순간 매제는 얼굴이 봄꽃처럼 환해지면서 신바람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노인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엄중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에세이집에서 은퇴 이후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을 두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정신적 미성숙상태라고 표현했는데 내게 그 문장은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은퇴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이 오십 전후해서부터 다양한 준비를 하고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하는데 나는 농장이 그런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학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장에서는 농사뿐만 아니라 상상 이상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로만 백세시대를 외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노인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서둘러서 그에 걸맞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만간 노인문제가 우리 아이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 시한폭탄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