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도서관 아카이빙 시민단 프로젝트

시민들이 일산시장 구술채록·영상기록  
“연말 자료집 발간, 전시도 열 계획”

일산도서관 아카이빙 시민단 참가자들. 앞줄 가운데는 2강 '일산원도심 나들이'를 진행한 이성한 도보여행가.
일산도서관 아카이빙 시민단 참가자들. 앞줄 가운데는 2강 '일산원도심 나들이'를 진행한 이성한 도보여행가.

[고양신문] 일산1동 경의선 철길 옆에 자리한 고양시립 일산도서관(관장 박미숙)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양 사람들과 100년을 함께 한 이웃 일산시장과 일산오일장에 얽힌 기억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산도서관 아카이빙 시민단’을 꾸린 것. 사업 명칭은 ‘100년의 이웃, 일산 장터–일산시장·일산오일장’이다.

구술 채록과 영상기록을 담당할 1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4월 첫 만남을 시작으로 여섯 번의 교육을 거쳐 6월부터 9월까지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일산도서관 관계자는 “시민아카이빙단이 기록한 결과물을 모아 연말에 자료집도 발간하고 전시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간적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 공간적으로 150개에 가까운 점포를 지닌 일산시장을 기록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프로젝트 첫걸음 길라잡이를 위해 아카이빙 전문가와 도보여행 고수가 1강과 2강 강사로 초청됐다. 이어 인터뷰 방법론, 파주중앙도서관 견학 등의 수업 일정이 이어질 예정이다.

첫 강의를 맡아 민간 아카이브의 개념과 가치를 집약적으로 설명한 서상일 작가는 마을공동체 아카이빙에 천착하는 기록활동 전문가다. <디어 교하>와 <안녕, 운정>과 같은 파주의 마을잡지들이 서상일 작가의 기획과 편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두 번째 수업은 이성한 호비문화연구소 소장의 안내로 일산시장 주변을 돌아보는 도보여행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고양을 대표하는 도보여행 안내자로 손꼽히는 이성한 소장은 일산시장 주변 경의중앙선 일산역과 원도심의 다양한 흔적들을 안내하며 장소에 깃든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들려줬다. 강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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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아카이브, 기억의 공동체 만드는 일

[1강] 서상일 기록활동가 

서상일 기록활동가
첫 시간 강의에서 민간 아카이빙의 개념과 가치를 들려준 서상일 기록활동가.

각자 풀어내는 이야기 조각에서 출발
기억, 의미 이끌어내는 질문 던져야  
공동체 개성과 특색 담긴 결과물 나와

민간 아카이브, 또는 공동체 아카이브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자신의 활동을 자신이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고 찾아가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과거 기록의 생산과 활용 주체는 지배계층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도 사대부 지배계층의 시각을 반영한, 위로부터의 기록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된 오늘날에도 기록의 생산·활용의 주체는 미디어와 권력, 대기업 등이 독점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상’의 가치가 재발견되며 시민 누구나 기록 생산과 활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발전과 시민사회의 성장에 발맞춰 민간 아카이브의 영역도 확장된 것이다. 

민간 아카이브의 성공적인 사례로 <서태지 아카이브>를 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서태지에 관한 모든 것을 모아놓은 온라인 공간이다. 이 어마어마한 작업을 자원해서 한 이들은 바로 팬들이다. <서태지 아카이브>는 서태지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서태지 팬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공동체 아카이브는 곧 ‘기억공동체의 자부심’과 연결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참여했던 민간 아카이브 중 월롱작은도서관 사례가 있다. 10년 넘게 활동해온 시골의 작은 도서관이 바로 옆에 공공도서관이 생기면서 문을 닫게 됐다. 활동가들은 모두들 “그동안 우리들의 활동이 덧없구나…”라며 허탈감을 겪고 있었다. 그들에게 “지난 시간들을 함께 기록하며, 함께 울어요”라고 말하며 공동체 아카이빙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아카이빙이 뭔지도 몰랐던 활동가들이 함께 했던 공간과 물건, 활동과 사람을 직접 기록하기 시작하자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비로소 “우리가 참 많은 일을 해왔구나”라는 사실을 느끼며 위로를 얻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이게 공동체 아카이브의 힘이다. 

공동체 아카이브를 할 때 처음부터 목적이나 주제를 정하고 시작하지 말았으면 한다. 가장 먼저 자유롭게 수다떨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기억과 이야기의 파편들이 수집되면 의미가 파악되고, 여러 의미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비로소 기록할 것들을 골라낼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그 공동체의 개성과 특색이 잘 드러나는, 고유한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다시 내 경험에서 예를 들자면 ‘술이홀 작은도서관’ 활동가들은 NIE(신문활용학습) 활동에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 활동을 통해 부모님 모임이 만들어졌고, 여러 명의 도서관 봉사자들이 유입됐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늘푸른어린이도서관’의 경우에는 동아리들이 엄청나게 많아 동아리들을 정리한 카테고리가 따로 있어야 했다. 

이처럼 정형화된 기록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수용하고, 삶의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민간 아카이브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기록자들이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참가자 여러분들이 일산시장 아카이브 작업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바라기는 표준화된 시선으로 일산시장의 상인들을 타자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방식은 시장 상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산시장’이라는 공통의 추억을 확인하고, 기억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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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 흔적, 삶의 자취 

[2강] 이성한 도보여행가 

도보여행, 가장 느리지만 세심한 여행
기찻길 시장 농협창고 학교 벽화골목…
곳곳마다 이야기 숨어있는 일산 원도심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일산시장과 일산 원도심 지역을 도보여행하려고 한다. 두 다리로 걷는 도보여행은 속도가 가장 느린 여행이지만, 대상을 가장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는 여행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레 들풀처럼 작은 존재 하나하나도 살피고 돌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저절로 정화되고 감수성이 충전된다. 

도보여행 중에서도 원도심을 걷는 여행은 다양한 역사 이야기와 만나는 나들이다. 일산 원도심 이야기를 경의선 철길에서 시작해보자. 우리는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올라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경의선’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평양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평부선’이라 부른다. 같은 철길이지만 누구의 관점이냐에 따라 이름이 다른 것이다. 

경의선은 1904년 놓여졌고, 고양에는 능곡역과 일산역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오늘날 경의중앙선은 편리한 이동의 수단이지만, 철로가 처음 놓여진 일제강점기에는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자 대륙 침략의 교두보였다. 그런가 하면 만주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독립운동가들이 일산역을 이용해 잠입하기도 했고, 6.25 전쟁 때는 동족상잔을 치른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일산역이 생기며 논밭이었던 이 일대가 유동인구가 북적이는 중심지가 됐다.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돼 현재까지 이어진다. 오늘날 일산시장은 성남장, 김포장, 포천장과 함께 경기도 4대 오일장 중 하나다. 그만큼 품목도 다양하고, 먹거리도 풍성하다. 

옛 일산역은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산역에서 가까운 곳에는 일산농협 창고 건물이 있다. 1970년대 만들어진 이 창고는 주로 양곡과 소금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유통의 변화에 따라 한동안 비어있었다. 현재는 고양시가 이 건물을 매입해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창고 맞은편 일산초등학교는 1924년 개교했으니, 어느덧 100년이 가까워온다. 1909년 개교한 고양초등학교에 이어 고양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학교다. 1번 국도와 가까운 고양동, 그리고 경의선과 가까운 일산에 가장 먼저 초등학교가 세워져 각각 덕양과 일산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일산역 앞 ‘재봉틀 박물관 카페’도 무척 특별하고 매력적인 곳이다. 이곳에는 1800년대와 1900년대 초반에 생산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재봉틀과 관련 제품들이 소장돼 있다. 일상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한다는 것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과거 일산시장에서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듯 쌀과 곡물, 채소 등 식재료 거래가 왕성했다. 오늘날에는 푸짐한 순댓국집과 오래된 경양식집 등 특색 있는 식당들이 찾는 이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일산시장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원도심의 주택가 모습을 간직한 골목이 남아있다. 신축 건물들 사이에 숨어있는 이 골목의 담벼락에는 십여년 전 벽화가 그려졌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색이 바래어가고 있다. 벽화골목이 끝나는 지점은 일산성당 후문으로 이어진다. 마음의 평안을 안겨주는 성당의 마당을 거닐며 일산 원도심 도보여행을 마무리하자.

함께 돌아본 것처럼 일산시장 주변 원도심 지역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카이빙 시민단의 역할이라 믿는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찾아내고 기록해 멋진 결과물을 남겨 주시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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