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연 무모 대표
3월 출간된 지역생활기록서
『일산도큐멘트』 기획·출판
주민 28명과 8개월간 작업
“지금의 일상 아카이빙 중요”
독특한 디자인, 주황색 속지의 ‘고양은 꽃’으로 시작되는 『일산도큐멘트 : 계획위에 흐르는 삶』. 2021 경기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일반부문으로 일산지역 주민들이 8개월 동안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지역 생활기록서다. 사진보다는 대부분이 그림으로 만들어진 책은 28명의 지역 주민들이 작가로 참여한 시대의 기록서다. 2021년 현재의 일상을 기록한 생활사 아카이빙 프로젝트는 주민들에게 호응이 컸고, 그 두 번째 아카이빙 기록서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책이 인쇄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기획한 여지연 무모 대표를 만나 8개월간의 과정 등을 오밀조밀하게 들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공모사업과 출판을 하고, 공공미술 프리랜서로도 활동하는 여지연 대표.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판화로 석사를 취득한 그는 사단법인 문화우리와 내일의 도시에서 기획팀장으로 활동하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메이데이기념 전야제 등 무대걸개제작과 ‘CT 도시경관기록보존 도시재생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성남국제북아트페어 초청 작가 전시와 서울시민문화한마당, 시민참여 미술축제(서울), 공공미술비평세미나, 공공미술 토론회, 탄광을 예술광으로 등의 다양한 문화교육프로젝트를 기획·주최 운영하며 경험도 쌓았다.
이외에도 다년간에 걸쳐 ‘공간문화아카데미’ 문화예술에 의한 도시재생 아카데미와 서울역사박물관 ‘반세기종합전-강남 전’ 사진아카이브 작업, 지역사회문화예술교육 활성화지원사업인 ‘독립매거진 우리 동네 만들기’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2010년에는 고양문화재단 주최의 아트고양프로젝트 ‘초록물고기’ 마을재생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며 고양시와의 인연을 맺었다.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재충전을 위해 그는 홀연히 2013년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곳에 1년여를 거주하며 유럽의 공공 문화를 자연스럽게 눈으로 배웠다. 이후 한국에 들어와 2015년부터 아동과 일반인을 위한 미술 교사로 활동하며, 2016 LH 미술 조형물 디자인 작업을 한다.
공공미술과 30여 년의 시간을 같이한 그는 독립 문화기획자로 홀로서기를 하고, 2018년부터 MUMO(무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사업자를 등록해 1인 출판사도 운영한다. 2020 경기문화재단 ‘드로잉의 기적’ 소상공인 프로젝트와 2020 고양시자치공동체지원센터 ‘신도시 스케치’ (1기 신도시 30주년 기념 기억 드로잉 작업)와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2021 일산 도큐먼트-계획 위에 흐르는 삶』을 기획해 책을 발간했다. 또한 경기도교육청의 ‘공공미술 교육 프로그램-김포’와 2021 ‘사람전’ 등 그룹전 다수를 진행하며 공공미술의 끈을 지역과 계속 이어갔다. 여 대표가 지역과 연계한 생활사 아카이빙을 다양한 작업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공공미술과 생활사가 그만큼의 충분한 미래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출간된 『일산 도큐멘트 : 계획 위에 흐르는 삶』은 그에게 있어서 애증의 기록이다. 그만큼 많은 인연이 닿아 있다.
“신도시 30년을 담아내려면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했어요. 작년 5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됐는데 28명의 참여 주민들 대부분이 그림 초보자들이었어요. 프로젝트 기간에는 1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어요. 글을 꾸미려 하지 않았고 일상의 가치와 소중함을 담아내려고 노력을 했어요. 참여 주민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사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하라고 주문했어요.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였어요. 그 과정을 거쳐 이 한 권의 책이 출간된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참여자들에게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자유롭고 파격적으로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잘하는 부분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재미를 주고 생활 속 기록이라는 완성도를 끌어올리려고 많은 소통을 했다. 생활사 아카이빙을 통해 기록이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가 후대에게 소중한 스토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욕심과 기대가 컸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감이 커졌다. 그래도 해야 했고 해내야 했다. 그렇게 8개월의 시간은 인적자원의 소중함과 기록자원의 풍요로움을 안겨줬다. 지난해 12월 작업을 마치고 올해 3월 1일 드디어 책이 완성됐다. 일부러 ISBN까지 등록했고, 국립중앙도서관과 지역 독립서점 등에 배부했다.
“일상의 문화는 기록이 되면 어른이 됩니다. 전통 기록문화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지만 그중 으뜸은 생활문화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상이 기록되면서 책으로 만들어지면 그 역할과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는 후대가 평가할 것입니다. 글을 읽고 그 시대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상상한다면 그 진가는 발휘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기록은 어떻게 보면 의식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을 기록하는 데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의식입니다”라며 생활 기록과 아카이빙에 대한 생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했다.
그는 어릴 적 꿈이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중학교 때 만화 제작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ACA 전국 만화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 미대에 진학 후 실력은 한층 성장했고 새로운 미술분야를 접하는 기회도 가졌다. 졸업과 동시에 공공미술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00년도 후반 임옥상 민중미술작가를 만나 문화우리에서 서울 아현동의 뉴타운개발 경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서울 뉴타운 낙원상가 세운상가 등도 많이 다녔고, 전문가와 현지인도 많이 만났다. 그들의 생활 속 이야기는 많은 영감을 줬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래된 것을 찍고 “와~” 감탄하면서 지금의 일상이 왜 중요한지 모를 때 참 아쉽다는 그는 “오늘은 곧 과거가 됩니다. 후대에게는 과거를 돌아보는 중요한 기록이고 생활사가 될 텐데, 지금의 우리가 아카이빙에 대한 개념을 크게만 보는 듯해요. 정작 우리는 지나간 그 시대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찾아보면서 지금의 일상을 아카이빙 하는 데는 소홀한 것 같아요”라며 아카이빙의 사실에 대한 기록적 가치에 둔감함을 아쉬워했다.
그의 그림엔 시간과 기억, 추억과 경이로움이 공존해 있으며, 시대가 담겨져 있다.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엔 디테일이 살아있다. 미래는 여 대표의 기록서들을 꼭 기억하고 그 기록의 책장을 분명히 넘겨 볼 것이다. 추억은 멀리 있는 것이지만 책의 단어와 문장, 이미지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고 시대의 진실성에 더 접근해 있을 것이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한 살아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산도큐멘트 두 번째를 준비하고 있어요. 첫 번째 일산도큐멘트를 준비하는 동안 ‘영혼이 탈탈’이었지만 그 어느 것보다 뿌듯해요. 기록가로서의 책무를 일깨우기도 했고, 기록으로서의 품격을 완성하는 작가들의 시선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그 시선들은 일상의 평범함을 꾸미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를 기록했다고 생각해 자부심도 큽니다”라며 기록을 품격으로 완성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림은 만인의 시다. 해석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현재 여지연 대표는 1기 신도시 일산의 기억을 드로잉으로 기록/출판하는 아카이빙 모임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 모집 기간은 5월 9일부터 6월 7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