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지난해 여름 미군이 이십년 간 주둔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이 나라는 갑자기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미처 준비되지 못한 미군의 황망한 철수와 공항에서 철수하는 미군 비행기에 올라타려는 현지인들의 처절한 몸부림, 급하게 철수했던 한국의 외교관들이 되돌아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작전으로 380여명의 아프간 사람들을 구출해 한국에 데려온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가슴을 졸이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어느새 해가 바뀌고 그들은 거의 잊혀졌다.
탈레반과 부르카로 상징되는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여성의 인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나라, 거칠고 험악한 산악지대와 메마른 사막,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이런 나라에서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의 고달픈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차별과 천대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생아로 태어나 천대와 외로움 속에 살다가 15살에 늙은 홀아비 라시드에게 시집간 마리암, 아들을 못 낳자 남편은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다. 반대로 여성 교육을 중시하는 깨어있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총명하고 아름다운 라일라, 두 여성의 삶은 소련군의 침공과 전쟁, 군벌들 사이의 내전, 탈레반의 지배, 미군의 주둔 등 아프간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한다.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하던 날 태어난 라일라가 성장하면서 두 오빠는 무자헤딘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난다. 소련의 공산주의 정책 덕분에 라일라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두 오빠는 전사하고 소련군은 철수했으나 승리한 군벌들 사이의 내전은 계속된다. 폭격에 부모를 잃고, 파키스탄의 난민촌으로 떠난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 라일라가 어쩔 수 없이 늙은 라시드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두 여성의 삶이 조우하게 된다. 한 남자의 두 아내로 만났지만 두 여성은 연대하여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서 서로를 구한다. 죽은 줄 알았던 라일라의 애인이 찾아오고 이를 안 라시드가 라일라를 죽이려하자 마리암은 라시드를 삽으로 내리친다. 남편이 죽자 마리암은 같이 떠나자는 라일라의 애원을 뿌리치고 탈레반의 손에서 라일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자수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적대적 관계일 수 있는 두 여성이 사랑과 연대로 남편의 횡포와 폭력에 맞서는 모습은 서늘한 감동을 준다. 라일라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죽음을 떠맡는 마리암, 상처투성이 그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한없이 넓고 깊은 사랑, 지극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카불이 옛 모습을 되찾자 라일라가 돌아와 마리암이 어릴 때 살던 오두막을 찾아간다. 거기서 라일라는 마리암의 아버지가 딸에게 남긴 편지와 유산을 발견한다. 라일라는 마리암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미군의 주둔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을 약속했다. 그러나 2021년 8월 이십 년 만에 미군은 철수했고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여성들은 다시 집이라는 감옥에 갇혔으며 부르카를 입어야하고 남자가족의 동반이 없으면 거리에 나올 수도 없다. 교육도 직업도 모두 꿈이 되었다. 라일라가 만든 학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탈레반 집권 이후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가난한 부모들이 열 살도 안 된 딸을 팔아넘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생후 20일 된 여아까지 매매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가슴이 답답하다.
전쟁과 가난으로 얼룩진 나라 아프가니스탄, 호세이니의 소설은 아프간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독자들을 이 나라 여성들의 생생한 삶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낯설기만 한 이 땅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아프간 여성을 만나면 손이라도 잡고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낯선 나라의 사람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느끼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고 글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