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주 주독대사
정범구 주 주독대사

[고양신문] “읽씹 당한 개톡에 꼬꼬무로 잠 못 이루고…”
이게 무슨 말인지 당신이 알아 들었다면 당신은 30대, 많아야 40대일 것이다. 만약 60대 이상이 이 말을 알아 들었다면 당신은 자녀들에게 친구 같은 부모일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 굳이 ‘번역’한다면 이 말은 “개인 카톡으로 보낸 내 메시지를 읽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상대방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는 말이다. 어느 신문 칼럼에 실렸던 문장을 빌려 왔다.

오래 전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이 말에 빗댄다면 오늘날에는 “당신이 쓰는 말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줍니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분명히 한국어인데 알아듣는 사람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나뉜다, 특히 세대별 언어 분화가 심하다. 현타(현실자각 타임), 마상(마음의 상처)같이 젊은 세대에게는 이제 표준어 같이 된 말이 나이 든 세대에게는 대략난감으로, 그걸 이해해 보려는 노력 자체가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이다. 안물안궁(안물어 봤고, 안 궁금하고)이나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는 않겠다) 같은 말에는 보다 개인주의화한 젊은 세대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네카라쿠배.
이건 또 무슨 말이냐구? 요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기업들 머리 글자를 모아 놓은 것이라는데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을 말한단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삼성, LG같은 기업들이 아니라 이른바 플랫폼 기업들이 대세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듯 문화의 단절을 겪고 있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농경시대를 거쳐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 온 나이 든 세대들에게는 오늘날 세상이 알아들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말 만큼이나 난해해졌다. 자신이 살아오며 체득한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자면 자칫 “라떼에는”을 눈치없이 반복하는 꼰대 취급받기 십상이다.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다 보니 사회 내부의 균열도 깊고 빠르게 진행된다. 1960년대 초, 전 국민의 80%를 차지했던 농민 인구는 오늘날 5% 이하로 줄어들었다. 농경사회에서 존중되었던 노인의 경험과 지혜는 분초를 다투는 디지털 시대에는 간단한 검색으로 대체된다. 지금 60~70대가 경험했던 대가족 제도는 이제 사회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1인 가구 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다원화되었다. 

다원화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사회가 내부적으로 더욱 잘게 쪼개어지고 나뉘어졌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 이제 경제가 성장해도 그만큼의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경제력이 스펙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선거철이 돌아오면 정치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20~30대 표를 잡기 위해 온갖 선심성 공약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5월 10일 공식 출범하였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사회 통합’에 대한 메시지가 없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0.73%의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인 만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에 대한 포용과 통합의 메시지가 있을 법도 했는데 그런 기대는 간단히 배반당했다. 그런데 따져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통합’ 이전에 ‘공존’의 메시지가 더욱 중요하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공존, 영남과 호남의 공존, 서울과 지방의 공존, 남성과 여성의 공존, 자본과 노동의 공존 등등. 

공존(共存, Coexistence),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는 상대의 존재 자체를 자기 존재처럼 평등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존재의 평등, 이것이 공존의 출발점이고 통합의 기초가 된다. 같은 땅에 살면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상대를 이질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한 통합은 어렵다. 새로운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지, 우선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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