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성석동 핸드드립 전문점 ‘느린커피’

고봉산 자락 진밭마을, 쌀 창고 리모델링
오크통에서 4주간 숙성시킨 특별한 커피 
카카오와 사탕수수로만 만드는 ‘빈투바’
“소박한 매력 담아낸 문화공간 꾸리고파” 

[고양신문] 성석동 고봉산 아래에 있는 핸드드립 전문점 ‘느린커피(대표 이수열)’에서는 이름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이곳 커피의 원두는 오크통에서 숙성의 시간을 한 번 더 거치고, 커피머신이 아니라 모카포트를 사용해서 여유롭게 내린다. 진밭마을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60평 규모의 노란색 컨테이너 건물은 평화로워 보인다. 세미 클래식이 흐르는 카페는 조용하고 편안하다. 

이곳은 쌀 창고였던 곳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내부는 널찍하고 천정이 높아 개방감이 든다. 다양한 디자인의 우드 테이블과 의자들, 노란색 조명은 따뜻한 느낌을 더해준다. 음악감상실을 연상시키는 대형 스피커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고 있다. 

쌀 창고를 리모델링해 카페로 꾸민 성석동 '느린커피'.
쌀 창고를 리모델링해 카페로 꾸민 성석동 '느린커피'.

이수열 대표는 40년 이상 고양시에 살고 있는 중산마을 주민이다. 그는 음악을 좋아해서 한때 팟캐스트를 운영한 적도 있다. 커피가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3년 전 카페를 오픈했다. “커피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많이 취득했어요. 미국커피품질연구소에서 발급하는 ‘큐 그레이더(Q Grader, 국제커피감별사)’ 자격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라이센스보다 경험의 축적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가 추천하는 이곳의 대표 음료는, 오크통에서 4주 동안 숙성시킨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다. 오크통은 미국의 양조장에서 버번 위스키를 담았던 것으로, 커피에 위스키 향이 배어 나와 독특한 풍미를 제공한다. 알코올 성분은 사라지고 위스키의 묵직한 향은 살아있어 커피의 바디감을 배가시킨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식민지에 와인이나 위스키를 보낸 후, 식민지에서는 그 오크통에 다시 커피를 넣어서 보냈지요. 이때 커피에 배인 독특한 향 때문에 인기를 끌게 된 것이 유래라고 해요. 스타벅스 시애틀 본점과 상하이 지점에서 이벤트 커피로 판매하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저희밖에 취급하는 곳이 없을 거예요.”

오크통 숙성커피와 빈투바 초콜릿.
오크통 숙성커피와 빈투바 초콜릿.

느린커피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모카포트로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맛은 깊다. 매일 바뀌는 ‘오늘의 커피’가 있고, 디카페인도 가능하다. 여름에는 산미가 적은 것, 겨울에는 산미가 있는 것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에스메랄다 게이샤나 카카오 음료 등 총 13종의 커피를 취급하는데, 고양시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힘든 음료들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저희는 국내에 거의 없는 독특한 원두나 음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각 나라별, 지역별, 농장별로 맛이 조금씩 다르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인데요. 고객들의 취향에 맞춰서 추천하는 것이 저의 사명인 것 같아요. ‘정말 맛있다’고 만족할 때 뿌듯합니다. 커피를 잘 몰라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본인의 취향을 알게 되기도 하지요.” 

오크통이 놓여있는 카페 내부.
오크통이 놓여있는 카페 내부.

또 하나의 대표 메뉴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이다. “빈투바란 카카오빈을 다른 첨가물없이 그대로 초콜릿바로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요. 초콜릿은 아이들이 먹는 것,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초콜릿은 원래 항산화 작용이 뛰어난 슈퍼푸드예요. 대량생산을 위해 카카오 함량을 줄이고 여러 첨가물과 향신료를 넣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게 된 것이죠.” 

이런 문제로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빈투바 운동이 시작됐다. 그 뒤로 카카오와 사탕수수 오직 2가지 재료만 사용하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콜릿은 카카오 본연의 산미, 꽃 향기와 너트 향기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로 되살아났다. 우리나라는 아직 빈투바 초콜릿이 보편화 되어 있지 않고 취급하는 곳이 드물지만, 아시아권의 경우 일본 홍콩 싱가폴 같은 곳에서는 대중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인터내셔널 초콜릿 어워드’의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 자신이 만든 초콜릿을 출품을 해서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외에 카카오 라떼, 초코퐁듀 등 빈투바 초콜릿으로 만든 음료와, 레몬, 망고, 자몽 등 수제청을 이용한 음료가 있다. 빵과 쿠키 등 베이커리는 외부에서 공급받는다.

“호불호가 명확한 것이 저희 카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요. 일부러 찾아오는 매니아들이 있어서 힘을 얻습니다. 음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받아들이는 느낌이 무척 다른 것 같아요.” 

느린커피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60종의 원두와 초콜릿도 판매하고 있다. 6월에는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 예정이라고 한다. 호응이 좋으면 정기적인 행사로 꾸며볼 생각이다. 대형 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느리고 소박한 문화공간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주소 :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로 254
문의 : 031-976-4842

대형 스피커와 악기가 놓인 한쪽 벽면. 
대형 스피커와 악기가 놓인 한쪽 벽면. 
'느린커피' 이수열 대표.
'느린커피' 이수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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