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양신문] 강은 아름다웠다. 상류 고산지대 빙하 녹은 물이 맑게 흘러내렸다. 강줄기 양쪽으로 산맥이 달리고 우거진 숲에서 사슴, 곰 같은 야생동물이 내려와 목을 축였다. 까마득히 오래 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자연에 순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산과 강은 아낌없이 축복해주었다. 먹고 입고 쓸 것이 모두 강과 숲에서 나왔다. 평화롭고 축복 넘치는 삶에 어느 순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총을 든 낯선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강물을 거슬러 커다란 배를 몰고 떼지어 모여들었다. 아름드리 나무를 찍어 강에 띄워 보내고, 늑대 여우 곰 심지어 토끼 다람쥐까지 쏘아 죽이고 가죽을 벗겨갔다. 이방인들은 강변에 집을 짓고 마을을 세우더니 강 상류와 맑은 물 내려오는 허다한 골짜기 지류 지천으로 발자국을 늘려갔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발견이니 개척이니 내세우며 뽐내는 게 이들의 버릇이었다. 선주민 부족은 쫓겨나 더 깊은 숲, 더 높은 산, 더 먼 땅으로 쫓겨났다.
숲이 밀려난 자리에 농장이나 목장, 양계장이 들어섰다. 마을은 읍이 되고 도시가 되었다. 말과 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동차가 달리고, 곳곳에 공장도 들어섰다. 쓰레기와 생활하수, 공장폐수, 농장의 거름과 농약, 닭 돼지 소 배설물이 넘쳐 빗물을 타고 강으로 흘러 들었다. 아낌없이 쓰고 버리는 생활 방식을 사람들은 개발과 성장의 성과, 문화 문명의 상징으로 여겼다. 어느 해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홍수가 일어나 여러 마을과 읍이 물에 잠겼다. 100여 명이 숨질 정도였으니 재산 피해도 막심했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 정치인들이 대책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강 중류를 가로질러 댐을 쌓자는 것이었다. 댐으로 강을 막아 인공호수로 만들면 홍수를 조절할 수 있고, 모인 물로 주변 여러 도시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전기도 만들고, 호수로 좋아진 경관 속에서 보트 놀이 낚시 수영같은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도록 ‘레저휴양지구’로 지정하면 연간 관광객이 1050만 명이나 모여들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내세웠다.
정치인들은 선심 쓰듯 장밋빛 개발 공약을 내세우고 의회에서 사업을 승인했다. 개발 사업의 선봉에는 군대가 나섰다. 일사불란 전광석화 작전으로 개발 지역의 주민 1만5000명을 몰아내고, 주택과 상점, 농장들은 철거하거나 방치해 폐허로 만들었다. 250년 전 ‘개척시대’에 선주민을 몰아낸 참극의 재연이나 다름없었다.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마을과 읍은 장차 인공 호수의 바닥이 될 참이었다. 방대한 토지를 국가 예산으로 사들인다고 하자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고 투기꾼들은 떼돈을 벌 꿈에 부풀었는데… 사업은 계획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나라가 외국에서 전쟁 벌이느라 예산 부족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전쟁터는 베트남, 허덕댄 나라는 미국, 훼손될 운명의 강은 미국 동부 뉴욕과 펜실바니아, 뉴저지, 델라웨어 주 사이를 흐르는 델라웨어강이다. 사업 추진을 맡은 군대는 토건 개발 전문집단으로 이름난 미 육군 공병단이다. 댐은 계획 지점 바로 위의 섬 이름을 따서 턱스아일랜드댐(Tocks Island Dam)이라고 부른다.
댐 건설 계획은 1962년 의회 승인 이후 논쟁을 이어가다 1975년에 최종 폐기된다. 공병단이 사업으로 얻게 될 편익은 부풀리고 비용은 축소한 데다 환경영향평가서를 허술하게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강으로 흘러 드는 하수를 정화하는 시설을 두지 않으면 녹조가 끼어 수질이 심각하게 나빠진다는 사실, 휴양 지구로 만들 경우 몰려들 관광객을 위한 교통 대책도 고려하지 않았다. 홍수를 조절하고 수자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강 본류보다 여러 지류, 지천에 댐을 만들거나 범람원(홍수터)을 두면 적은 비용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검토하지 않았다. 당시 케이힐(Cahill) 뉴저지 주지사가 이런 문제점을 간파하고 연방 정부 대표도 참여한 ‘델라웨어강 유역위원회’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인플레이션과 투기 세력 때문에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1969년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고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게 되자 미국인들 사이에 지구와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것도 시대적 배경으로 기억할 만하다.
델라웨어강 턱스아일랜드댐 개발-보전 논쟁은 우리 상황과도 흡사하다. 논란 높았던 새만금 방조제 건설, 4대강 사업, 아라뱃길로 부르는 경인운하도 경제성이 높고 이익과 효과가 크다고 정부와 개발을 맡은 공기업은 내세웠다. 경인운하만 보더라도 2조6700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여객이나 화물 실은 배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지방공항들이 대부분 적자투성이인데도 부산 가덕도, 제주2공항, 새만금을 비롯해 새로 추진 중인 곳이 아홉이나 된다. 자연을 훼손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개발 사업을 정치인들은 선심 쓰듯 공약으로 던진다. 선심은 흑심이다. 표를 낚아채기 위한 낚시 미끼,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탕발림 속임수다. 유권자 국민의 지갑을 털어가는 행위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선심성 개발 공약을 간파하고 얄팍한 정치꾼을 걸러낼 수 있는 기회다. 표 주고, 돈 털리고, 우리의 공유 자산 자연 환경까지 망쳐서야 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