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고양신문] 뉴스에서는 연일 새로 선출된 대통령과 지방선거 소식으로 시끄럽습니다만, 저는 그 와중에 유학의 경전인 《대학·중용》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정치의 무관심자이거나 이번 선거의 중요함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중요함을 절감하고 있기에 분주히 움직이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어서입니다.
얼마 전, 그러니까 대선 이전에 한 지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투표할 거야?” 나는 그 친구에게 “나한테 할 거야”라고 답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나는 내심 진심을 말한 것입니다. 투표는 후보에게 행사하는 것이지만, 그 행위의 시작도 나이고, 결과 역시 결국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내 일상의 욕망을 읽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입니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 것일까요? 그 바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과연 괜찮은 후보 하나를 선택하면 세상은 변하는 걸까요? 나의 변화 없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내가 먼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생략한 정치, 내가 빠진 대리정치는 우리를 구경꾼으로 만들 뿐입니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노예로 만들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역행한다 하더라도, 내가 변하면 그만큼은 세상이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선거기간을 내 삶의 변화를 위해 나의 마음을 다잡는 기간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뉴스나 SNS에 떠오르는 소식들은 모두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방안을 살펴보았더니 건물을 만들고, 아파트를 새로 짓고, 기업을 유치하고, 다리를 놓고, 일자리를 만들고, 재건축을 허용하고……. 모두 어마어마한 예산이 드는 것입니다.
나는 더이상 성장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돈이 없거나 성장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돈을 추구하고, 성장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바뀐 것입니다. 성장으로 생긴 문제를 성장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병으로 병을 해결한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대안입니다. 성장추구의 욕망이 양극화를 낳았고, 이기적 능력주의를 자라나게 했으며, 자연파괴,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그런데 또 성장이라니요.
김구 선생님의 말마따나 우리가 없어서 약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정도로 충분히 부유하고, 세계 군사강국으로 손꼽힐 정도로 충분히 강합니다. 이제 나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한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발전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경쟁과 탐욕으로 어지러운 세상이 아니라 연대와 나눔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나는 바랍니다.
《대학》은 자연 탐구로부터 세계의 평화에 이르는 8개의 덕목을 다루면서 그 중심에 내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修身)’을 놓았습니다. 《중용》은 그 수신의 방법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감을 강조합니다. 정치는 일상의 연장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바로 내가 가장 중요한 후보입니다. 내 마음의 소리가 공약입니다. 기호를 배정받은 후보들은 거리로 상가로 나가 큰소리로 자신을 뽑아달라고 외치는 동안,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닦습니다. 투표일이 되면 나는 나의 소리와 공명하는 정치적 후보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