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서 시체로 만든 육회?
무시무시한 말인데, ‘고양시체육회’를 잘못 띄어 쓰면 그렇게 된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고전적인 예문이 진화한 썰렁 개그라고나 할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가 한글이라고 하지만, 사실 한글을 바르게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잘못된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이상한 존칭, 틀린 말, 어려운 말, 잘못된 외국어 등등이 난무하여, 참말이지, 이 우수한 한글이 무척 고생이 많다.
“커피 나오십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 이 말들은 약간 틀렸다.
“커피님 나오십니다”, “좋은 주말님 되십시오”가 맞는 것 아닌가? 흠흠.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위대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언어를 통해 그냥 ‘사람’이 아니라 ‘인간(人間)’이 된다. 다시 말하면, 언어가 사람들(人) 사이(間)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언어가 잘못되면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잘못되어 사회가 삐걱댈 것이다.
“나는 오늘 큰 누나가 너무 웃겨다”. 30여 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조카의 일기장에서 본 문장이다. 이거야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전문적인 연구보고서들에도 주어가 두 개인 문장들이 더러 있다. 아무리 좋은 꿀도 꿀단지가 깨지면 다 새버리듯이,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론이나 정책대안도 문장이 틀리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이다.
또 언어는 사람들 사이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언어에는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혼(魂)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잘못된 외국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그 사회의 혼이 혼탁해진다. 그런데 요즘 가만 보면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관공서나 언론까지도 잘못된 외국어들을 무척 많이 사용하고 있다. 외국어 좀 하는 사람이 봐도 무슨 뜻인지 애매할 때가 많고,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저 배우지 못한 신세 한탄이나 한다.
전국에 퍼져 있는 ‘복합커뮤니티센터’나 고양시청 내 조직인 ‘그린모빌리티팀’이 뭐 하는 곳인지 알쏭달쏭하다. 작년에 고양산업진흥원이 ‘고양 혁신 창업 챌린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란 것을 실시했는데, 알파벳 쓰는 나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필자도 도대체 뭐 한다는 것인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온갖 얄궂은 아파트 이름들은 시골 사는 시부모가 찾지 못하게 하려고 붙여졌다는데, 씁쓸하지만, 그나마 이해는 된다. 흠.
삼성전자는 한글 사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금성’과 ‘선경’이 ‘LG’와 ‘SK’로 사명을 바꾼 것은 솔직히 좀 거시기하다. 그나마 이들이야 세계시장에서 영업을 하니까 그럴 수 있다 해도, 동네 주민들 푼돈으로 운영되는 새마을금고까지 ‘MG’라는 사명을 쓰다니… 언어 사대주의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아침마다 TV 뉴스를 들으며 늘 헷갈린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 ‘A씨’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강도를 당해도 A씨, 성폭력을 해도 A씨, 횡령을 해도 A씨… 무슨 놈의 A씨가 그리도 많은지...
틀린 말, 혼탁한 말도 문제지만, 어려운 말도 큰 문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재산 문제를 처리할 때도 있고, 복지혜택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의 관련 법조문이나 정책문서들은 난해한 일본식 한자어나 정체 모를 외국어로 무척 어렵게 쓰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해가 안 돼서 괜히 비싼 돈 주고 변호사한테 가거나 복지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어려운 언어는 재산상의 손해를 초래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복지혜택을 못 받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 얼마 전 손흥민 선수가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라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이라는 감격적인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아들 손흥민을 직접 훈련시킨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손 선수가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 패스, 드리블, 슈팅 같은 기술 이전에 7년 동안이나 리프팅(축구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기) 같은 기본기만 훈련시켰다고 한다. 바로 그 바탕 위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본부터 좀 충실했으면 좋겠다.
